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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아버지, 그립고 그리운 그 이름

 

세월이 흐르수록 그리운 아버지를 부를때면 눈물이 먼저 고인다.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큰 남동생은 날이 갈수록 돌아가신 아버지와 닮아 간다.

현재 기무사령부의 전신인 특무대(Counter Intelligence Corps, CIC-1950년대, 군사 기밀을 다루던 육군본부 소속 특무부대의 약칭) 출신인 아버지를 모든 사람들은 어려워 했다. 하지만 난 아버지의 무거움이 무척 좋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쓰여 있는 아버지 방에서 앞뒷장이 떨어져 나가 제목을 알 수 없는 시집에 있던 시가 너무 좋아 어린시절 아무 뜻없이 외웠던 그 시가, 대학 입학 직전 소련의 혁명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이별의 시” 란 걸 알았을때의 그 지적인 충격, 다락방에 굴러 다니던 일본말로 된 만화책을 열심히 보았는데 그것이 세계명작전집이란 알았을때의 국민학교 시절의 경이로움.

일본어와 중국어, 역사에 능통한 아버지와의 식사 시간이 어느때에는 2시간씩 되었을 때도 어린시절 저려오는 다리를 꼬집으며서 나는 자리를 지켰다. 너무 흥미 진진하고 재미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통해서 아버지처럼 생각하기, 아버지처럼 세상하고 대면하기를 익혔다. 아버지가 안 계실동안 큰언니를 빼놓고, 아들이 어린 우리집에서는 셋째인 내가 아버지를 흉내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고집스러운 나를, 겉으로는 엄하게 하시면서도, 뒤에서는 웃고 계셨다. 어쩜 은근히 부측기셨는지도 모른다. 독자이었던 아버지는 딸도 좋으니 많이만 낳으라고 해서 위로 4녀에 밑으로 2남이 된 우리집은 책만 보고 있으면 만사형통이었다. 특히 딸들에게 공부해서 머리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언제나 강조하셨다. 그 뒷바라지를 한 어머니는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일을 즐기는 나의 평생 습관도 아버지의 훈육 덕분인 것같다. 일요일 새벽 6시가 되면 모두들 기상해서 남산으로 베드맨턴을 하러 가곤했다. 일어나기 싫어서 꾀를 부리면 아버지는 가화만사성이라 쓰여져 있는 안방에서 큰기침으로 모두를 깨웠다. 운동후 남산 휴게실에서 마시는 아버지의 모닝커피 맛을 통해, 난 어른의 세계를 어름픗하게 느끼곤 했다.

고등학교 입학전에는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대망 12권, 일본의 근대화의 주인공을 그린 샤카모토 류오마의 후대망 15권을 다 읽으면 금강구두를 맞춰주신다고, 상품을 걸고 독서의 양과 급을 높이시기도 했다.

철이 들면서 시를 읽었던 아버지의 고뇌가 마음에 와 닿기 시작하며, 아버지가 격려하고 지원한 딸이 사회적 성취감이 높다는 통계를 증명 하듯이 난 매사에 무엇이든지 노력했다.

너무나 닮은 우리집 조희철대표와 조연주실장 부녀를 보며 딸에 대한 기대와 사랑으로 희비를 겪고 있는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며, 나 또한 우리 어머니처럼 기원한다.

아버지와의 친밀도는 남자들과의 세상 조화에서도 많이 적용 된다. 그들이 좀더 세상에서 이상을 펼치기를, 좀더 가볍게 세상을 화합하며 살 수있기를 지켜보며 돕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움 받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그들과 타협하는 방법을 이미 어렸을때 아버지한테 배웠기 때문일까.

어쩜 아버지의 통해 세상 바라보기를 익히며, 바라 보시던 그 기대치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온 나는 아들 조현을 보며 또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또한 염원한다. 아들의 이상이 세상과의 조화를 통해 평화롭게 이루워지기를,

아버지 기일이 되면 우리 형제는 돌아가면서 각자 기억속에 남아있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아버지의 손주들에게 들려준다. 그러면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듣는다.

큰언니에게 “혜숙아, 너는 장녀이니까 절대 동생들 손을 놓으면 안된다”라고 말한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하며 언제가 아버지를 만나면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아버지, 우리 잘 살았지요” 그럼 아버지 “고생들 했다”라고 하실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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