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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다시 주목받는 화장실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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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5월 24일  21:44:04   전자신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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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자(大記者)

‘화장실’ 하면 좋지 않은 추억들을 많이 생각한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어두컴컴한 공간이라는 것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댁엘 가면 변소 가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앞마당을 지나 귀신이 나올 듯한 으슥한 곳에 헌 가마니로 대충 두른 문도 없는 공간이었다. 농경사회의 잔재로 분뇨를 거름으로 대신했던 시절로 아마도 초등학교 때까지 분뇨를 퍼날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교마다 화장실에 대한 전설은 다 있다. 소풍이나 체육대회때마다 비가 오는 이유는 학교에서 일하는 소사 아저씨가 화장실에서 나온 이무기를 삽으로 찔러 죽여서 그렇다는 얘기에서부터 달걀귀신이 있다는 등의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한 소리였다. 학창시절에는 담임선생님은 꼭 잘못한 학생들만 화장실 청소당번을 시켰다. 그만큼 지저분한 혐오공간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거다.

고교시절에는 일부 조숙한 친구들의 흡연공간이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면 주번교사가 화장실 순찰을 돌며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화장실 칸을 급습하기도 했다. 신병훈련을 받을 때는 짬밥만으론 배가 많이 고팠다. PX이용도 마음대로 못할 때였다. 지금도 생산되는지 모르겠지만 ‘바람개비’ 빵과 ‘베지X’을 잔뜩 사 군복 품에 감추고 냄새 나는 화장실에서 남몰래 꾸역꾸역 먹었다. 조교에게 들켜 화장실 통로 흙바닥을 ‘낮은포복’으로 기는 얼차려도 받아봤다. 긴장한 탓인지 훈련소 입소 5일째가 넘어서야 화장실 앞이 훈련병들로 장사진을 이룬 풍경도 이채롭다. 이때까지는 거의 이른바 ‘푸세식’ 화장실 문화였다. 80년대 중반 고등학교 선생이 됐을 때쯤 공중화장실이 수세식 변소로 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후배들을 괴롭히고 심지어 구타하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주번교사의 단골 순찰코스 1순위가 화장실이었다.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에 취재를 갔다. 급한 나머지 공중화장실에 들어갔더니 확 트인 공간에서 바지를 내린 채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용변을 보던 풍경을 보고는 ‘대략난감’이었던 나의 모습에 지금도 절로 웃음이 난다.

이렇듯 화장실에 관한 추억은 다양하다. 화장실의 변천은 문화 발전의 역사로 볼 수 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이에 따라가면서 발전한 게 화장실 문화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이 지금처럼 쾌적한 휴식공간으로 변한 건 불과 20년도 채 안 됐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향기가 나는 일종의 문화적 공간이 됐다. 잠재해 있는 마음속에 누구나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화장실에 ‘문화’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사람은 상곡(桑谷)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다. 시내 공중화장실에 ‘문화가 있는 화장실’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수원의 문화적 전통을 담아낼 수 있는 건축양식에다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화장실 수십 개소를 건축했다. 화장실 하나를 짓는데 몇 억씩을 들이느냐며 핀잔도 들었다. 장애인, 여성, 노약자를 위한 공간도 설치하고 책과 꽃과 향기가 있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꾸몄다. 1997년 한국화장실협회장에 이어 2007년에는 세계화장실협회(WTA)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다. 수원시 이목동에 살던 집을 허물고 ‘해우재(解憂齋)’라는 ‘화장실 문화 전시관’를 지어 세계적인 명소가 되도록 했다. 전국 어디를 가나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을 보면 그가 생각나는 이유다.

최근 강남역 인근의 한 공중화장실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해 전국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았다. 이제서야 정치권이 공중화장실법을 개정한다거나 화장실의 안전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 법은 이미 고 심재덕 수원시장이 국회의원 시절인 2006년 대표발의해 세계 최초로 시행됐다. 이 법에 명시된 남녀 화장실 구분 설치만 제 때 제대로 했어도 이런 국민의 아픔은 방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화장실은 이 시대에 단 하나 남은 개인 한 사람만의 가장 사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문화가 들어있어야 한다. 2009년 작고한 ‘화장실 시장’ 상곡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 더 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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