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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오십 미터

오십 미터

/허연

마음이 가난한 자는 소년으로 살고, 늘 그리워하는 병에 걸린다



오십 미터도 못 가서 네 생각이 났다. 오십 미터도 못 참고 내 후회는 너를 복원해낸다. 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축복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게 그런 축복은 없었다. 불행하게도 오십 미터도 못 가서 죄책감으로 남은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수로 그리움을 털겠는가. 엎어지면 코 닿는 오십 미터가 중독자에겐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지화면 처럼 서서 그대를 그리워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오십 미터를 넘어서기가 수행보다 버거운 그런 날이 계속된다. 밀랍인형처럼 과장된 포즈로 길 위에서 굳어버리기를 몇 번. 괄호 몇 개를 없애기 위해 인수분해를 하듯, 한없이 미간에 힘을 주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잊고 싶었지만 그립지 않은 날은 없었다. 어떤 불운 속에서도 너는 미치도록 환했고, 고통스러웠다



때가 오면 바위채송화가 가득 피어 있는 길에서 너를 놓고 싶다

 

 

 

치통 앓듯 사랑을 앓았던 적 있다. 아픈 사랑은 형벌에 가까웠고 급기야 빨리 늙어 감정이 죽기를 소원했다. 의미 없는 바람을 언덕을 둘러싼 신발을 신었다 벗었다. 시인은 오십 미터도 못가서 사랑이 생각나는 이별이라 했다, 잊어버리는 축복이라고도 했다, 수행보다 버거운 오십 미터 넘어가기가 힘들다고도 했다. 절절한 아픔이 이렇게 차갑게 따듯할 수가 없다. 심지어 사랑스럽기까지 한 이별이다. 최소한 독자에게는 그래서 공감의 폭이 도를 넘어 고백하게 만드는 시다. 세상에 이렇게 멀쩡한 땡볕이라니 외치는 광장이라니 오십 미터도 못가서 주저앉아 통곡할 사랑아, 마침내 때가 오고 내일을 맞이할 사랑아, 보고 싶어 한기를 느끼는 내 사랑아. /정운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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