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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만신창이 된 ‘섬마을 선생님’

 

‘섬마을 선생님’은 1967년 개봉된 영화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엄마 손을 잡고 보러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50~60대 중·장년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법한 영화다. 감독이 누구인지 관심이 없을 때였지만 영화를 만든 김기덕 감독을 대학에 입학하고 교수로 만났던 인연도 있다. 지금은 76세 할머니가 된 가수 이미자씨가 부른 노래는 10살인 나도 흥얼흥얼 따라부를 정도였다. 영화의 배경은 남해안의 어느 섬마을 학교지만 인천 앞바다 대이작도의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월남전에서 돌아온 의대생 명식은 휴학을 하고 섬마을로 내려가 학생들을 가르친다. 전사한 후임 권상병의 유언에 따라 섬마을 사람들을 계몽하고 진료해준다. 그러나 가르치고 치료하는 일보다 문화와 단절된 섬 사람들의 편견과 무지, 오해의 벽을 넘어서는 게 더 힘들었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처럼 농촌계몽운동과 거기서 오는 대립과 갈등을 그리며 당시 시대상(時代相)을 반영했던 영화다. 이후 섬마을 선생님을 주제로 한 드라마와 영화도 몇 편 있어 인기를 끌었다. 섬마을과 선생님이라는 제목만 보더라도 그 자체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연상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캐나다에 이민가 사는 작은 형도 1976년 백령중학교 대청분교에 국어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지금도 당시 순진무구한 학생들과 오순도순 지냈던 이야기를 한다. 배를 타고 육지로 떠나오는 날 감자와 옥수수를 삶아와 울면서 건네주던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눈물을 다시금 흘리기도 한다. 이렇듯 섬마을 선생님이라면 섬에서 자란 이들이나 교사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있는 가슴 설레는 추억이다.

그런 섬마을 선생님이 지난달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주민 3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그중 2명은 학부모란다. 지난 3월 이 학교로 부임한 20대의 새내기 교사다. 평소 안면이 있는 식당에서 식사하다가 식당주인 등이 강제로 권한 술에 정신을 잃은 사이 이들은 관사에서 집단 성폭행을 했다. 아무리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외딴 섬에서 홀로 근무하는 새내기 여교사에게 저지른 범죄는 패륜을 넘어 말문이 막힌다.

피해를 당한 여교사의 남자친구가 SNS에 올린 글에서 사건 발생 2주가 지난 뒤에야 언론에 공개됐다는 것을 언급하며 학교 측에서 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했다. 이에대한 교육부의 대책을 보면 더 화가 난다. 여교사의 도서벽지 학교 신규배치를 가급적 하지 않는다는 것과 혼자 사는 교원의 관사에 우선적으로 CCTV를 설치해준다는 초보 수준이다. 이는 1967년 제정된 도서·벽지교육진흥법에도 명시돼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도서·벽지학교들에 대해 학교 부지·교실·양호실 기타 교육에 필요한 시설을 구비하고, 교원에 대한 주택을 공여하는 한편 적절한 교원의 배치 등에 관하여 다른 지역에 우선해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서·벽지교육진흥법만이라도 제대로 지켜 시행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동안 도서벽지 학교 관사의 안전시설이나 CCTV 설치 현황에 대한 조사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꼭 일이 터져야 대책을 마련한다고 법석 떨고 허둥지둥하는 게 어디 교육부뿐이겠는가. 화장실 간 여성이, 등산하던 아주머니가 순식간에 주검으로 돌아오는 세상이다. 집 나서기조차 무서운 대한민국이다.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헌법 제24조에도 이같은 내용이 명시돼 있다. ‘열 사람이 도둑 한 명 못 잡는다’지만 100명을 투입해서라도 잡아야 한다. 국민이 안전해야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지금 자리다툼에 여념없는 국회의원 중 누가 또 도서벽지진흥법 개정을 들고나올테지만 ‘양치기 소년’들에게 국민들은 더 이상 기댈 것도 없다. 다만 ‘섬마을 선생님’이란 아름다운 단어를 이처럼 혐오스럽게 만들어버린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지 답답한데다 당장이라도 국민들의 속이 터져버릴 것 같은 게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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