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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영국민의 선택은?

영국의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가 오늘 실시된다. 캐머런 총리가 2013년 1월 브렉시트(Brexit)를 언급한 이후 3년6개월, 1975년 EU의 전신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을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진 지 41년 만이다. ‘21세기 착한 사마리아인’ 조 콕스 하원 의원의 피살사건으로 여론조사에선 잔류쪽이 약간 우세하지만 부동층이 10% 이상이나 돼 투표 당일까지 향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국론 분열의 위기까지 맞고 있는 영국은 사실 EU의 산파역인 유럽통합을 최초로 제안한 나라다. 그 중심에는 유럽비전을 제시한 윈스턴 처칠이 있었다. 그는 세계2차대전 이후 1946년 “미래의 유럽전쟁을 막을 수 있는 본질적인 방법은 유럽통합이다.”며 유럽합중국(Unites States of Europe) 설립을 주창해서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앞세워 말과 행동이 다르자 그의 주장은 유럽 대륙에서 먹혀들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스의 드골이 통합 작업을 했다. 드골은 1950년 독일과 철강 석탄 공동 관리 계획을 만든 뒤 벨기에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등을 끌어들였다. 6개국이 참여하는 유럽철강석탄공동체를 출범시킨 것이다. 그리고그것이 모태가 되어 1954년 유럽경제공동체(EEC)가 탄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럽 외톨이가 된 영국은 1963년 뒤늦게 EEC에 참여하겠다고 신청했지만 드골이 거절했다. 영국의 EEC 가입은 1969년 드골이 은퇴하고 나서야 성사됐다.

영국은 20세기 중반 이후에도 줄곧 유럽통합 논의에서 한발 비켜서 있었다. 특히 EU의 중심 회원국이지만 지난 2012년 유럽 재정위기 당시부터 매년 수십억 파운드나 EU 분담금을 내는 데도 혜택보다는 유럽의 이주민 유입으로 일자리만 빼앗긴다는 불만을 터뜨려 왔다. 따라서 EU 회원국이 내건 잔류 조건은 파격적임에도 불구하고 정권마다 탈퇴 논란이 계속 불거졌다. 결과에 따라 세계 정치 경제에 미칠 파장도 매우 커 유럽은 물론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영국의 국민투표. 최종 결과는 한국시각 24일 오전 10시쯤 알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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