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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문학]앨빈 토플러가 걱정한 한국의 교육과 미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한국의 교육과 정치에 대해서 걱정을 했다. 그가 ‘한국의 아이들이 사라질 직업을 위한 공부에 매일 15시간씩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한 시점은 2007년이다. 교육과 정치에 대해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다양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한 한국은 이념과 교육과 언론의 다양성과 개성을 억압하고 있다.

이렇게 개성과 다양성이 환영받지 못하는 문화는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더욱 취약한 경제구조를 만든다. 한국인의 개성과 다양성이 억압되면 한국인들이 생산하는 제품과 콘텐츠도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범주 안에 놓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단순 노동업무뿐 아니라 전문직의 자리까지 전반적 분야에서 해외에서 수입된 ‘인공지능+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다음은 인공지능으로 사라질 직업의 6가지 특성이다. ▲쉽게 알기 어렵지만 업무 규칙이 명확하다(의사나 판사도 여기에 해당됨) ▲학벌이나 자격증으로 보호받고 있다(공무원이나 전문직도 여기에 해당됨) ▲책상에 앉아서 그 일을 배울 수 있다(공교육 전체 체계를 바꿔야 함) ▲의외성과 복잡성이 없어서 일이 편하다(이제 공부는 편하게 살기 위한 것이 아님) ▲현장경험 보다는 모니터링이 중요하다(몸과 두뇌가 현장에서 하나가 되어야 함) ▲배운 내용이나 규칙이 평생 변함없다(적시학습과 평생학습이 기본이 됨).

21세기의 창조적 두뇌는, 독서는 전혀 안 하고 다양한 게임만 하던 아이에게서도 나올 수 있으며 운동과 만화만 좋아하던 아이에게서도 나올 수 있다. 모두가 리더가 되는 협치(민주정치의 프로슈머)의 시대에는 다양한 사고의 틀을 가진 인간군들이 서로의 감각과 경험을 존중하면서 공익적인 창조성과 인간적인 친화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예술이나 체육 등 흔히 알려진 인문학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각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문고전 독서가 필요하다기보다는 그냥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할 뿐이다.

미래인문학은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까지 접근해야 한다. 쇼펜하우어가 ‘독서는 사색의 대용품에 불과하다’고 말한 이유는 감정이 결합된 직접체험이 사색하는 힘이 되며, 독서라는 간접경험보다 직접경험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과거 천재들은 간접경험을 하기 전에 직접경험과 동기가 너무나 풍부했으며, 독서를 시도할 때 거의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인문고전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대에는 영상만으로 고도의 사색이 가능하며 환타지 소설만으로도 다독과 맥락학습이 가능하다. 영화감상만으로도 고차원의 사색을 할 수도 있다.

오늘날 인문고전 독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인류공영의 사랑과 지혜에 이르는 진리가 여기에만 있다고 외치는 또 다른 도그마다. 책과 상관없이 온몸으로 노동하거나 무술을 익히는 속에서도 지혜와 사색을 얻을 수 있으며 단지 앉아서 생각의 뿌리를 캐는 사색과 명상으로도 지혜에 이를 수 있다. 인문고전 독서가 성공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어느 책이든 감동하며 읽으면 마음의 힘인 감응과 동기가 생기는 법이다. 감동(감응과 동기)은 인간의 기본적 정서와 연결된 모든 활동과 장르에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감정과 행동의 역사에서 파생한 인문학은 당연히 인간을 공부하는 것이라서 근본적으로 돈벌이와 성공에 결정적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세상사는 인문이며 그 기록은 인문학이다.

21세기에서 22세기로 흐르는 오늘날은 인류 경제의 흐름을 아는 힘이 철학보다는 심리학과 뇌 과학, 그리고 복잡성(카오스)에 관한 이론과 양자물리학의 이론들로 옮겨왔다. 요즘 출판되는 좋은 책들은 이미 과학과 예술과 인문고전이라는 영역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학문이 융합되어 있다. 인문학의 본류는 신학과 신화에서 시작해서 철학과 예술을 지나서 첨단 과학에 이르렀다. 이제는 과거와 반대로 과학자가 예술가와 철학자와 신학자에게 영감을 주는 시기가 되었다. 이제 ‘문사철(文史哲)’이란 인문학보다는 과학적인 독서와 예술적인 통찰이 강해야 새 시대의 인문학 인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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