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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야간자율학습’ 자율에 맡기는 게 옳다

 

나에게도 요즘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야간자율학습의 추억이 있다. 197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이른바 ‘뺑뺑이’ 세대인 나는 추첨으로 수원북중학교에 배정됐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극성(?)맞을 정도로 학생들을 공부시켰다. ‘스터디 홀(Study hall)’이라는 이름으로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해 밤 10시까지 학생들을 강제로 교실에서 공부시켰다. 담임선생님도 꼬박 교실을 지켰음은 물론이다. 수원북중이 우리나라 야간자율학습의 효시(嚆矢)였던 셈이다.

도시락을 두 개씩 싸왔다. 형 것까지 매일 4개를 준비해야 하는 어머니는 늘 반찬걱정에 시달리셨다. 여름이면 밥이 쉬어 물에 말아먹었다. 교장선생님의 극성(?) 탓에 그래도 우리 학교는 서울고 경복고 용산고교 등 서울의 명문고교와 배재 양정 휘문 중앙 보성 등 입학가기가 꽤 어려웠던 5대 사립고교에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중학교의 순위가 명문고교에 얼마나 합격시켰는가로 판가름나던 시절이어서 북중은 더욱 명성을 날렸다.

나 역시도 서울의 고교로 진학해보려고 공부를 꽤나 열심히 했으나 서울 부산의 고교가 1974학년도부터 평준화가 돼 입학 길이 막혀버렸다. 혹시나 야간자율학습이 없어질까 은근히 기대했지만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가정형편이 넉넉하면서 공부를 잘한 친구들은 인천으로 일부 진학했지만 나는 여건 상 수원에 머물렀다. 내가 입학한 수원의 공립 S고교도 서울로 가지 못 한 우수한 학생들이 경기도내 곳곳과 충남지역에서까지 몰려들었다. 수원북중의 학습효과를 경험한 S고교도 자연스레 야간자율학습을 했다. 수원북중 출신들이 가장 많아 곧 정착이 됐다. 강제적인 ‘야자’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대학합격률을 높여준 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는 수원에 변변한 사설학원도 없었고, 도서관이나 독서실도 몇 개 없었던 터라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았기에 더욱 그랬다.

획일적이고 반 강제적인 야간자율학습은 자율화 시대를 역행하고,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이라는 지적에 수긍한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달라져 이미 오래 전부터 야간자율학습은 희망하는 학생만 한다. 문자 그대로 진정한 자율학습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내년부터 야간자율학습의 폐지하겠다고 최근 밝혀 인문계 고등학교들이 어수선하다. ‘야자’에서 학생들을 ‘해방’시키겠다는 표현까지 썼다. ‘야자’는 대입과 학력에 중요한 부분이어서인지 다른 시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 시간에 지역의 대학과 연계하여 예비대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모든 학생들에게 일률적, 획일적으로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강남대, 루터대, 서울장신대, 성결대, 성공회대, 안양대, 한세대, 한신대, 협성대 등 9개 대학 총장과 간담회를 열었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특정 종교와 관련된 학교들이다. 아주대 경기대 그리고 서울 소재 대학에는 요청은 했는지, 참여의사가 없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야자’는 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이 원해서 하는 일이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오히려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이다. 예비대학 프로그램으로 모든 학생의 잠재력이 일깨위지고 상상력이 발휘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금 야자를 하고 있는 학생들은 공부하며 선생님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잠재력을 키워나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부분 대학진학을 목표로 택한 학교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가서 미래의 더 큰 꿈을 펼치는 게 목표다. 학교는 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을 제공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내신과 학력고사 위주의 현행 대학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데 ‘야자’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고 한 공언에 속은 ‘이해찬 세대’가 있듯이 ‘야자’폐지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자칫 경기도만의 실험이 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 경기도교육청이 시급히 고민해야 할 것은 ‘야자’문제가 아니라 전국 하위 수준의 학력을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을까 하는 게 더 큰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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