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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IN]차별과 배제는 가장 나쁜 문제해결 방식

 

한 사회에서 인권을 보장하는 가장 큰 장벽은 개인을 집단의 속성으로 정형화 시키고 배제하는 사회적 태도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과 맥락보다는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그가 속한 집단의 속성으로 판단하고 배제하는 행태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집단 간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 금수저와 흙수저 등의 갈등은 사회구조적 문제들이 깊어지고 있는 결과이다.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집단으로 정형화하고 차별과 배제하는 이기주의적인 삶의 방식이 만연하게 된다.

최근 부산에서 광란의 질주로 3명이 죽고 14명이 다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 직후 운전자가 뇌전증 발작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뇌전증 환자의 운전면허를 정지해야 한다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경찰청 간의 질병정보 공유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가 제기되었다. 뇌전증 환자의 교통사고 한 건을 두고 마치 뇌전증이 사회생활을 못하는 심각한 질환인 것처럼 포장하고, 뇌전증 환자 전체를 마녀사냥처럼 다루는 분위기였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30만 명의 뇌전증 환자가 있으며 약물로 관리하면 충분히 사회생활이 가능하다. 게다가 이 사건은 운전자가 뇌전증과 무관하게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사고를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유사한 상황은 강남역 살인사건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평소 조현병을 앓던 가해자는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해 화가 났다며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을 끔찍하게 살해하였다. 사건 직후 경찰은 조현병 질환자에 의한 전형적인 묻지마 범죄로 본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강신명 경찰청장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신질환자의 범죄 방지를 위해 범죄 위험소지 정신질환자 판단 체크리스트 완성, 현장 경찰관이 의뢰하면 의학적 판단을 거쳐 지자체장 입원 요청, 당사자 퇴원 요구시 거부 조치 적극 검토 등을 제안하였다. 정신질환자들을 모두 예비 범죄자로 몰고 가는 꼴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50만명에 가까운 조현병 환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조현병은 여러 가지 원인과 발병 기전에 의해 생기기 때문에 모든 조현병 환자들이 동일한 증상이나 기능, 경과를 가지지 않는다. 일부 조현병 환자의 행동을 전체 환자의 특성으로 확대해서 보지 말아야 한다. 조현병은 약물관리 및 재활치료를 통해 일상생활 유지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사회생활로부터 배제되고 있다.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편견을 극복하고자 ‘정신분열병’이라는 병명을 ‘조현병’으로까지 바꾸었다. 이들에게 진정한 장애는 정신과 증상이 아닌, 사회적 편견이다.

외국에서도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범죄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버지니아 공대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이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등 정신질환을 앓던 재미 한국인 대학생이 교내에서 총기를 난사하면서 본인을 포함한 33명이 목숨을 잃었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부각하면서 마치 한국인 전체의 범죄인양 백배사죄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에서는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한 ‘개인적인 사안’으로 규정하였다. 물론 같은 동포가 관여된 참혹한 비극의 아픔을 함께해야 하지만, 한 개인을 그가 속한 집단과 동일화시키는 논리는 분명 문제가 있다.

총격 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우리나라와 매우 달랐다. 사건 직후 미국에서는 경찰과 교수, 판사, 교육 공무원, 피해자 지원 국장, 의사 등의 전문가 집단이 사건의 배경, 병원의 대응, 사건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 대한 지원체계 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대학내에 어려움이 있는 학생을 조기에 발견하고, 사건발생시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전문팀을 구성하고, 상담 인력을 대폭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사건의 배경에 있어 총기소지의 문제, 대학과 경찰의 부실한 대응, 이주민 정착문제 등 사회구조적인 요인에 더욱 근본적인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특정 사회문제에 대해 그가 속한 집단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가장 쉽지만 가장 나쁜 문제 해결방식이 아닌, 좀 더 심층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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