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아재 개그로 이어지는 세대 간 소통
[정준성칼럼]아재 개그로 이어지는 세대 간 소통
  • 경기신문
  • 승인 2016.08.2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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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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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主筆)

‘할머니 좀 비켜주세요’를 경상도에서 세 글자로 줄이면 뭐라 하지요? ‘할매 쫌!’, 그럼 두 자로 줄이면? ‘할매!’, 그렇다면 한 글자로는? ‘쫌!’이지요.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새 지도부 초청 오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질문한 뒤 자답했다고 전해지는 개그내용이다. 박 대통령의 ‘썰렁 개그’는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미 유명하지만 이날 이 같은 아재 개그로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트렸고, 오찬분위기는 시종 부드러웠다고 한다. 이를 두고 모 야당인사는 한 방송프로에 출연, 요즘 유행하는 아재 개그에 빗대 ‘누나 개그’라고 호감을 표시할 정도였다고 하니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분위기를 바꾸는 데는 개그만한 게 없는 모양이다.

청와대가 아니더라도 요즘 시중엔 아재 개그가 넘쳐난다. 내용도 다양하다. 왕이 집에 가기 싫으면 뭐라고 하나? 답은 ‘궁시렁 궁시렁’, 화장실에서 방금 나온 사람을 네 글자로 표현하면? ‘일본사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은? ‘최저임금’, 차문을 세게 닫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문이 네 개니까’, 방금 전에 울다가 그친 사람은? ‘아까운 사람’, 소금의 유통기한은? ‘천일염’, 송혜교 송대관 송윤아의 공통점은? ‘성동일’, 아이스크림이 다 죽었답니다를 네 글자로 표현하면? ‘다이하드’ 등등. 간혹 한참을 생각해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지만 표현력이 뛰어난 한글의 우수성을 활용한 것이 많아 친근함을 더한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이어지던 이런 아재 개그가 지금은 연령층에 관계없이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청년문화가 시대를 대변하고 대중문화의 중심에 있었으나 아재들이, 일부이긴 하지만 대중문화마저 접수(?)하고 있는 형국이다. ‘쉰세대’로 표현됐던 아재들의 힘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사실 아재란 말은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듯 아저씨의 낮춤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보다 연령이 낮은 사람을 일컫는 친족 호칭이다. 지방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숙부, 삼촌이라고도 한다. 볼록 나온 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늘어진 러닝셔츠 차림에 반바지, 종아리까지 올린 회색 발가락 양말, 거기에 샌들을 신은 중년. 그동안 아재 혹은 아저씨의 이미지는 꼰대 혹은 안하무인 개저씨 등과 같은 모습으로 비춰졌다. ‘아줌마’와 함께 ‘아저씨’는 40대 이상의 뻔뻔함을 겸비한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때문에 얼마 전까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재란 ‘유행에 처진 나이 먹은 사람’이며 가부장적 권위주의를 대변하는, 또 어딘가 모르게 비호감을 느낄 수 있는 중장년층을 일컬어 왔다. 따라서 최근 뜨는 가요나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ㅇㄱㄹㅇ(이건 레알)’ 따위 유행어를 얼마나 아는지 묻는 비슷비슷한 판별법도 난무했다. 노래나 말을 잣대로 진단을 해서 자신들과의 선긋기도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아재 개그는 유치함을 무릅쓰고 젊은층과 융화 소통해 보고자 무뎌진 유머감각을 되살려 나름대로의 고심 끝에 구사하는 농담이어서 호감을 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부 젊은이들은 이러한 중장년층의 노력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아재 개그에 열광하며 기꺼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도 유행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고 있다. 다소 썰렁하고 유치한 듯하지만 권위주의를 떨쳐 버리고 다가서는 중장년층의 눈물겨운 노력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라고나 할까. 연식이 좀 오래돼 감이 떨어진다는 것뿐 심각한 비호감의 대상까진 아니라는 것을 청년들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것이 다행이다. 또 자기들과는 다른, 그래서 배려가 필요한 ‘옛날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는 최근의 사회현상을 놓고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웃음과 재미를 주는 일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정성 그리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효과는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결실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상대방의 농담이 별로 재미없더라도 함께 웃어줄 줄 아는 아량이 많아질 때 인간관계를 친밀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도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청년 문화는 그 시대를 대변한다. 그런 점에서 청년들의 존재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 청년들도 세월이 지나면 아재로 변한다. 그러기 전 틈나는 대로 아재 개그를 많이 날리자. 새우가 출연하는 사극은? ‘대하사극’, 가장 야한 채소는? ‘버섯’. 세대 간 더 많은 소통을 위해 어서 빨리 ‘꼰대개그’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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