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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고대 시서화의 사상과 표현 정신

 

먼 옛날 중국의 대륙에서는 오랫동안 시와 그림이 지식인들의 주요한 사유의 장이자 통치의 일환으로 작동했었다. 시서화란 그림과 시가 조화를 이루며 합일을 이루는 형식으로서, 단순히 형식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정신적인 차원에서도 사물의 형태와 뜻의 일치,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진리의 추구를 목표 삼았다. 송나라 태조(太祖)는 나라의 안정적인 통치를 위하여 이전 당나라까지 이어오던 군벌통치와 결별하고 문신정치를 펼쳤다. 이에 따라 어지러운 세상을 한탄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성인들이 취미와 풍류로써 즐기던 시서화가 사대부들의 필수적인 교향으로 자리잡았다.

시서화의 발흥은 노장사상의 확산과 관계가 깊다.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실질적인 법과 예를 구축하고자 했던 유가사상과는 달리, 노장사상은 자연의 이치를 중요시 했다. 위진남북조와 당나라를 거치는 내내 힘의 논리에 의해 작동되던 정치 체계에 환멸을 느끼던 이들은 명상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노장사상에 매료된다. 그리고 노장사상을 접하며 마음속에 그려진 심성은 당나라 말기에 이르러 ‘산수(山水)’로써 형상화되기 시작한다. 시서화에서는 산과 강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실제 존재하는 지역을 참고하여 그려진 것들이지만 말 그대로 참고만 했을 뿐 특정의 장소를 가리키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이때 문인들은 대상을 재현하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마음에 떠오르는 심상을 적절히 표현하면 그뿐이었다. 당나라 선종(禪宗)은 형식과 표현 대상에 따라 회화를 북종화와 남종화로 분류하는데, 외면적인 형태를 구사하는데 치중했던 북종화와는 달리 남종화는 보다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표현을 선호한다. 당연히 문인화 혹은 시서화는 남종화의 계보에 속한 장르이다. 한편 시서화의 기원은 당나라의 빼어난 시인 두보(杜甫)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의 심성을 감동적으로 전달했던 두보는 제화시(題畵詩), 즉 그림 위에 그림의 제목과 관련된 시를 지어 화폭에 적어 넣는 형식을 완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얘기했듯, 아웃사이더 지성인들의 놀이이자 취미였던 시서화는 문신정치가 안착된 송대에 들어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는 필수교양으로 자리잡았다. 이제 시와 그림은 주류문화의 일부가 되었고 이때부터 도피적인 성격만을 띠기보다는 통치의 ‘도’ 역시 이야기하였으며, 노장사상에 더해 유불도 사상도 흡수하게 되었다. 시서화가 주류 문화가 되면서 시서화에 관한 이론들도 발전한다. 앞서 당나라 때에도 장언원이 ‘역대명화기’에서 ‘서예와 그림이 이름만 다를 뿐 같은 몸’이라고 주장한다. 한자가 사물의 생김새로부터 형상을 따온 표의문자이니 본래 그림과도 같다는 의미이다. 송대 ‘주역(周易)’에서는 ‘글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다 나타내지 못하고, 언어는 마음에 숨은 뜻을 다 드러내지 못한다’는 글귀가 등장한다.

오래된 역사를 더듬다 보면 낯설고 신비한 언어로 대화했던 문화를 접하곤 한다. 말과 언어가 마음속의 숨은 뜻과 눈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담아내기 부족한 그릇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리는 법과 행정의 체계 안에서 눈에 보이는 정확한 사실, 측정가능한 양적인 것들로만 모든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냉정함 앞에서 절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서구의 구조주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인류의 역사에서 법과 질서, 그리고 언어가 일종의 억압기제로 작동했다는 것을 꼬집었었다. 현대미술은 간혹 눈에 보이는 현상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 사이의 괴리를 파고들며 우리가 놓치고 있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들을 들추어낸다. 문화와 예술은 우리의 실질적인 작동 체계의 보다 깊숙한 곳으로 초대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투쟁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물로 이후 송대 문인정치에도 폐단이 생겨 인맥과 파당을 중심으로 권력은 부패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에 형성된 뛰어난 사상과 표현형식은 큰 자산을 형성하며 이후에 펼쳐지는 역사에,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중국대륙의 중요한 변화의 시기에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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