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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처음∼끝 함께 한 길 이젠 남북화합의 꽃 피어나는 길

출판도시부터 성동사거리까지 총 10㎞
일반 출반도시와 달리 이국적 건물 많아
철새낙원 ‘공릉천’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오두산성 등 문화·역사적 유물도 볼거리

 

 

 

6코스 파주 출판도시길

 

파주는 군사분계선, 민간인통제선 등이 놓이면서 분단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자유로, 통일로, 평화로 등 우리가 간절하게 바라는 소망이 담긴 길들이 모여 통일을 염원하는 땅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시작된 곳이자 그 전쟁을 끝낸 곳, 155마일 군사분계선이 가로새겨진 기점이자 남북화합과 교류의 시대를 연 파주. 이국적인 출판도시와 통일전망대를 만날 수 있는길, 평화누리길 파주 첫번째 코스인 출판도시길(6코스)의 역사·문화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 인간과 자연, 문화와 산업이 공존하는 파주출판도시
 

 

평화누리길 6코스 출판도시길은 현대 인쇄문화를 접할 수 있는 출판도시에서 시작해 인공으로 조성된 생태습지, 문발동·신촌동·송촌동 등 마을, 하구습지, 오두산 통일전망대 등을 잇는 코스로 총 10㎞다.

특히 하구습지는 겨울이면 재두루미 등 여러 철새들이 찾아와 아이들의 생태학습장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출판도시길의 시작점은 이름과 같이 파주출판도시다.

한국 출판문화의 메카로 정식명칭은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다.

지난 1997년 기획부터 인쇄까지 출판 전 과정을 해결할 수 있는 국가산업단지로 조성됐다.

일반적인 출판단지와 달리 이국적인 건물로 가득한 이 곳은 파주출판도시가 ‘좋은 공간 속에서 좋은 시각, 좋은 글, 좋은 디자인이 나오고 그것이 곧 바른책을 펴내는 것으로 연결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책의 도시이자 건축의 도시로 재탄생한 파주출판도시는 책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이 모두 진행되고 있어 파주출판도시 전역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파주출판단지에는 출판사와 인쇄사, 디자인사와 저작권중개사 등 250여개의 관련기업이 입주해있다.

청소년의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책방, 갤러리, 공연장 등 40여곳의 문화공간도 마련돼있어 파주출판도시만의 견학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조형물을 보는 재미와 함께 책과 편안하게 놀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이렇게 출판도시를 벗어나 길모퉁이를 돌면 인공으로 조성한 늪지가 나타난다.

늪지를 지나 신촌동에 들어서면 저 멀리 소박한 농촌의 모습을 한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신촌동을 지나면 송촌동이 나오는데 송촌(松村)은 소나무가 많아서 생긴 지명이다.

이곳의 또 다른 이름은 마을 옆을 흐르는 공릉천가에 웅덩이가 많아 소리지라고도 불린다.

출판도시길 코스에서 철새의 낙원이라는 공릉천도 빼놓을 수 없다.

공릉천은 양주시 챌봉에서 발원해 고양시를 거쳐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국가하천으로 이 공릉천을 가로질러 북으로 향하는 다리가 바로 송촌대교다.

곳곳에 흐드러진 억새 또한 장관이니 이국적인 출판단지에서 벗어나자마자 만나는 자연의 본 모습은 문화산업과 자연이 공존하는 파주의 모습을 느끼기 좋다.
 

 

 

 

 

 

 


■ 고구려와 백제의 주도권 싸움의 주무대였던 ‘오두산성’ 그리고 ‘통일전망대’

파주 오두산성은 과거 삼국시대 고구려와 백제가 일전을 벌였던 군사적 요충지다.

산성외곽의 무너진 성곽으로 그 옛날 치열했던 전투 흔적이 남아있다.

고구려의 상징인 까마귀 삼족오(三足烏) 머리 모양을 하고 있어 오두산(烏頭山)이라 이름 붙여진 오두산성에는 통일전망대가 위치한다.

연천과 포천일대, 강원도의 통일전망대의 고지가 1천m를 넘는 반면 오두산은 118m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곳은 통일전망대와 서해안을 관측하는 국방상으로 중요한 기지 역할을 하는데 이는 바로 지형의 특성때문이다. 과거 관미성(關彌城)이라 불렸던 이 지역은 백제의 북쪽 국경에 있던 철옹성이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있어 백제의 관미성은 반드시 격파해야할 대상이었고, 이를 실현한 이가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은 영토를 건설한 광개토대왕이다.

실제 관미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는데 현존하는 최초 역사서인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제5 광개토왕 2년(392년)에는 ‘백제의 관미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그 성은 사면이 가파르고 바닷물이 둘러싸여 있었다. 왕이 군사를 일곱 길로 나눠 공격, 20일만에 함락시켰다’라고 기록돼있다.

일부 학자들은 관미성을 현재 강화도의 교동도 혹은 예성강 하구의 성곽으로 추정했으나 지난 1995년 파주가 발간한 ‘파주군지’에 의하면 관미성이 지금의 오두산성임이 밝혀졌다.

고구려의 관미성 함락은 백제에겐 충격적이었는데 오랫동안 한강 유역 일대를 지배해 온 백제가 자신들의 영토를 빼앗길 수 있는 위기에 처했기때문이다.

이에 백제도 곧 반격을 시도해 393년(아신왕 2년) 8월 백제장군 진무(眞武)가 1만 군사를 거느리고 관미성 탈환 작전을 시도하나 성공하지 못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진무는 5개성을 탈환했으나 관미성 만큼은 고구려 군사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끝내 되찾지 못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결국 백제는 관미성을 되찾지 못하고 신라에 배신당해 한강 유역을 버리고 금강 일대로 천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고구려와 백제의 백년전쟁 역사가 깃들어있는 오두산성의 삼국시대때 모습은 세월이 흘러 많이 사라졌지만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문화재청과 파주시가 지난 1990년대 중반부터 발굴 사업과 복원사업을 추진해 현재 오두산성을 복원했다. 복원된 오두산성은 백제식 산성 형태보단 고구려 산성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는데 이는 고구려가 오두산성을 점령하면서 자신들의 축성기법에 따라 재축성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였던 오두산성은 오늘날 다시 전략적 요충지로 부각됐다.

분단으로 인해 서해 끝자락에 있던 오두산이 북한 지역을 관측할 수 있는 최고 요충지로 자리잡은 것.

분단의 현실 앞에 놓인 우리에게 오두산성 위 통일전망대는 무거운 의미로 다가온다.

파주 송촌대교를 지나 눈앞에 ‘통일’이란 이름의 전망대 앞에 서면 해안 철책 너머로 광활한 논밭이 펼쳐지는데 통일전망대까지는 2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북녘과 남녘의 너른 들판과 한강, 서해바다를 보며 오두산성이 다시금 평화의 상징으로 부활하길 소망해본다.

/이슬하기자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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