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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반칙 없는 사회’ 오늘부터 시작이다

 

오늘 자정을 기해 ‘부정청탁방지법’이 시행되면서 대한민국 사회는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됐다. 오늘부터 이 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들은 그동안 ‘부패방지법’ 등의 법률과 규제에서 대부분 불법으로 규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부정청탁과 불법 그리고 비리로 계속 얼룩져왔다. 오죽하면 3만(식사)-5만(선물)-10만(경조사)원의 상한선을 규정해 처벌하겠다고 하겠는가. 전두환 정권 시절 관공서나 학교에는 ‘정직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슬로건이 걸려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믿었던 사람이 바보였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고소영(고대 소망교회 영남) 강부자(강남 부자)’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우리 사회에 깊숙히 뿌리박힌 지연 혈연 학연 위주의 체제를 비아냥거린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반칙 없는 사회’를 역설하며 억울한 사람, 소외된 사람 없이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이루고자 했지만 친인척과 측근들의 ‘반칙’으로 말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우리 사회의 반칙문화는 이른바 ‘갑’의 위치에 있는 공직자 언론인 등이 부패해서라고 말한다. 자주 만나는 오랜 친구는 나에게 항상 얘기한다. 언론과 공직사회 교육이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 말에 나 역시 일정 부분 공감한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상사나 친지 친구들의 민원해결을 위해 내 일처럼 이리저리 뛰기도 했다. 인사청탁을 비롯해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을 많이도 해봤다. 그러나 이젠 다행인지 모르겠다. 청탁 아닌 부탁마저도 힘들게 됐으니 말이다. 공무원들 역시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은 스스로 ‘공무원은 부패했다’고 답할 정도다. 정부 조사 결과다. 공무원을 대해 본 민원인의 입장이라면 이해하고도 남는다. 부패지수가 아프리카 수준인 세계 40~50위권이라니 이쯤되면 할 말이 없어진다.

1960~8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와이로’의 사회였다. ‘와이로’라는 말은 ‘뇌물’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초등학교 반장과 전교회장이 되려면 선생님들에게 이것을 갖다 바치기도 하고, 되고 나서도 제법 큰 돈을 들여 돌조각을 기증하고, 또 전체 교직원에게 식사를 대접해야 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인사부탁이나 예산배정 청탁을 위해 서로 돈을 주고받는가 하면 민원인들로부터는 급행료(?) 명목으로나, 인허가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크고작은 뇌물을 받았다. 억울하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직 언론 교직 종사자들이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 이유다. 공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대상자들이 감수해야 한다. 일찌기 성호 이익은 “백성이 가난한 것은 아전(衙前)의 탐학(貪虐) 때문이고, 아전의 탐학은 뇌물 때문이며, 뇌물이 자행되는 것은 법이 해이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부정청탁방지법의 취지를 잘 설명한 말이다. 뇌물은 선택과 판단을 뒤집어야 하는 경우가 생겨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이로 인해 피해입은 당사자들을 극도로 분노케 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도덕과 규범으로 공정한 룰이 지켜질 수 없다면 법으로라도 강제해 반칙 없는 공정한 사회를 이뤄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책무라 할 수 있다. 물론 공정한 사회는 법치보다 몇 차원 위에 있는 길이다. 신분·학력·지연 등의 요소에 따른 차별을 배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출발과 과정에서부터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 패자에게 또다른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로 가는 길이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불공정이 공정으로 둔갑하는 사례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부정한 청탁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시행 초기의 혼란과 불편은 기꺼이 견뎌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경계할 것은 공직사회의 무사안일과 침체 분위기다. 법이나 조례에 인허가를 보장한다 해도 담당 공무원이 안 된다면 안 되는 게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공직사회에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지 않는 부작위(不作爲)가 성행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법 적용 대상자 모두도 지금 납짝 엎드려 당분간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얘기가 돌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복지부동, 무사안일. 이것도 공정사회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반칙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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