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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다시 고개 드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

 

“정권 후반기가 되면 늘 복지부동이란 말이 나온다.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으로 일부에선 공무원과 현장 간의 소통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눈치 보지 말고 국민과 소통하라”. 경제부처의 10월 월례조회 시 장관의 훈시내용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민원인이나 업계 관계자들을 꺼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만나라”. 이건 차관회의 주문사항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무원들은 애매한 민원전화는 문서로 요청하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시간을 끈다. 민원인이 전화로 물어보고 이에 대해 답을 해도 법 위반은 아니지만 아예 오해의 여지를 없애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각 지자체들도 김영란법 시행으로 공직자들이 일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적극적인 행정을 잇따라 당부하지만 구두선에 그치고 있다.

김영란법과 관련해 한 언론사 인터뷰에 응한 국민권익위원회 고위 공무원은 취재기자에게 “이 커피는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해서 드리는 겁니다만, 모호하시다면 안 드셔도 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모든 법은 시행 초기 ‘공포 마케팅’ 효과가 나타난다. 판례 1호가 되면 안 된다는 공포다. 이 법을 핑계로 공무원들이 민원인과의 만남을 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식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이 확산될 거란 우려를 많이 하는데, 이는 법 시행 초기에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성장통이자 우리 사회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라고 말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자칫 공직사회의 시계가 당분간 멈춰지는 성장통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직무상 관련하여 모호하기만 한 커피 한잔. 이를 얻어마시는 것도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나 역시 자주 통화하고 만나던 국장급 공무원 친구에게 전화조차 꺼리게 됐다. 죽마고우라 하더라도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직무관련성 때문에 조심스러워서다. 둘 다 김영란법 적용대상이니 더욱 그렇다. 공직자들 사이에서는 일일이 직무 연관성을 따져보느니 안 만나는 게 상책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만나던 외부인사와의 만남을 꺼리게 되는 것도 부정청탁이 없다 하더라도 투서나 내부고발로 구설에 오르면 당장 곤란을 겪게 되는 게 공무원이다 보니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도리어 뭣좀 알아봐달라느니 하는 자질구레한 부탁과 민원에서 해방될 수 있어 잘됐다 싶으면서도 친구관계가 소원해질까 걱정이라고도 했다.

공무원을 자주 만나야 하는 기자들도 취재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공무원이나 경찰 중 일부는 당분간 만나지 말자고 한단다. 밥값의 ‘더치페이’는 이제 바람직한 현상으로 자리잡았지만 취재원인 공무원을 만나기가 어려워진다면 큰 문제다. 해당 기관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보도자료와 알맹이 없는 질의응답이 오가는 브리핑, 전체 기자단을 대상으로 한 실국장 미팅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언론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가 없다.

건축이나 토목에 관한 민원도 그렇다. 지금도 공무원들에게 매달리고 사정해야 겨우 인허가를 받는다. 민원처리기한 마지막 날 내려지는 보완지시로 또 부지하세월 기다린다. 최근 만난 지방자치단체의 한 공무원조차도 ‘김영란법’을 ‘복지부동(伏地不動)을 가속화할 법’이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행정행위는 담당자들이 소신껏 판단하는 재량행위가 많은데, 감사에 더해 이제는 김영란법까지 신경써야 해서 모두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다. 그래서 서류 등에 작은 하자라도 있으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반려해야 구설수를 피할 수 있다. 밤낮으로 규제개혁을 생각하라는 대통령의 당부도 허공의 메아리가 될 판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된 후 예상했던 공직사회의 모습이지만 이래선 안 된다. 국민의 공복(公僕)인 공무원들이 당연히 제공해야 할 공공의 서비스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김영란법을 계기로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 ‘영혼’을 되찾는 공무원들이 돼야 한다. 아울러 이 기회에 해야 할 일, 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등 ‘소극행정’에 대해 최고 파면까지 할 수 있는 인사혁신처의 공무원징계령을 강력히 적용해야 한다. 공직사회의 시계가 멈춰지지 않기 위해서는 공직사회의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을 퇴출시키는 게 김영란법의 성장통을 최소화하는 길임을 지금 당장 깨달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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