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잘못된 신념이 불러오는 왜곡과 갈등
[정준성칼럼]잘못된 신념이 불러오는 왜곡과 갈등
  • 경기신문
  • 승인 2016.10.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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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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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主筆)


한 달에 두세 번 나가는 작은 모임이 있다. 4명이 전부고 명칭도 없다. 격식을 갖추지 않은 채 반주를 곁들인 식사 자리라 굳이 정례모임이라 할 것까진 없으나, 만나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나보다 연배이고 정치색에 있어서 여야의 색깔이 분명한 두 사람의 언쟁도 가끔 일어나 더욱 그렇다. 엊그제도 그랬다. 최순실, 미르, 송민순 회고록 등등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뉴스들이 대화의 소재가 됐고 여지없이 두 사람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보수와 진보를 서로 폄하하는 지경까지 이어져, 나와 다른 한 사람을 머쓱케 했다. 4명이 모인 자리에 2명의 충돌이라. 요즘 정치권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마음 또한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흔히들 정치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신념의 집단’이라 한다. 좋은 의미에서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서로 다른 신념 때문에 충돌하고 헐뜯고 멸시하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권뿐만이 아니다. 우리사회에는 서로 다른 이 같은 신념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로 분열된 한국 사회여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상대방이 어느 쪽인지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이야기의 진위에 관계없이 신념과 소신이 다르면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회로 변모했다.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 또한 그러하며, 때로는 친구끼리도 이념 때문에 논쟁을 하고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래서 가정과 학교와 직장에서 정치 이야기를 할 때는 늘 조심스럽다. 이렇게 가장 가까워야 하는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를 경계하고 불신해야만 하는 상황은 우리의 삶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한밤중에 만나는 귀신이나 유령일까?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은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질 때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사람이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할 때다. 그걸 거부하면 적으로 간주해 주저 없이 남을 해치려 하기 때문이다”라는.

잘못된 신념을 갖게 하는 데는 곡학아세(曲學阿世)도 한몫하고 있다. 정치인이 경멸의 대상이 되고 지식인들이 뭇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자신이 배운 학문을 신념으로 왜곡포장 해서 세상에 아첨을 하고 있어서 그렇다. 곡학아세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사회적 위치를 이용하여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고 태도를 취하며, 입신출세를 위해 권력에 아부하는 지식인들의 그릇된 처세”를 비웃는 말이다. 다시 말해 지식인이 배운 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입신출세를 위하여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세태에 대한 냉소다.

요즘 우리 사회에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을 돌아보면 실감이 더 난다.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국정감사만 보더라도 “20대 국회는 식물국회였던 19대 국회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며 의원들이 개원 초부터 법안 발의 경쟁을 벌이는 등 소신과 신념에 찬 의욕을 보이기는 했다. 아울러 현안에 대해 폭넓은 정책 검증에 주력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혹시나’는 ‘역시나’로 끝나가고 있다. 당리당략에 신념을 묻어 버린 채 야당은 폭로와 의혹 제기에 몰두하고 여당은 방어에만 급급했을 뿐이다. 덕분에(?) ‘권력형 비리’ 의혹의 추궁을 기대하며 국감 최대 이슈였던 미르와 케이스포츠 의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측근인 ‘최순실씨 스캔들’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또 한 번 쓴맛을 봐야 했다.

국회가 의원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과다한 증인 출석 요구 등 국정감사의 ‘갑질’ 행태를 근절하겠다고 다짐한 것도 결국 달라진 게 없었다. 막말과 호통이 난무하는 등 구태도 여전 했고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증인도 모두 409명을 불러냈으나 자기 말만 반복하기, 몰아세우기 등 막가파식 질의가 계속된 탓에 260명(63.6%)은 입도 못 열고 자리만 지키다 돌아갔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한계를 모르고 날뛰기 쉽다. 거기에 무식함과 신념이 더해지면 휘두르는 칼과 같아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한다. 그래서 권력의 행사를 법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곡학아세 하며 법망을 탈피해 권력을 남용하려 든다. 최근 세상에 회자되는 권력형 비리를 보면 더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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