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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이하석



어둠 속 높이 선 이순신은 전신이 파랗다

온통 바다 아래 잠긴 듯하다

폐교 운동장 침범하는 학교 앞 새로 핀 유흥가 불빛 때문인가

어떤 밤엔 빨갛게 달아오를 때도 있다



운동장 안 넘보는 건 취한 불빛뿐만 아니다

누가 애완하다 버린 짐승들조차 동네 떠나지 않고

그의 어둠 뒤지며 노략질한다

밤의 폐교 안은 내란으로 내몰린 바다처럼 들떠 있다



아이들 소리 하나하나 풍선처럼 떠올라 사라진 하늘엔

별들만 왁자지껄하니, 은바늘 쌤통 뾰루지들 돋아있다

- 시집 ‘것들’ / 2006

 

 

 

고속도로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고향으로 접어들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마치 동화책의 한 페이지 같은 친근한 폐교가 있다. 때론 휑한 그늘과 일방적인 구름이 안타까울 때도 있지만, 그 폐교 안에는 변함없이 키가 크고 푸른 칠이 벗겨진 이순신 장군이 우뚝 솟아있다. 담장을 넘은 웃음기 사라진 해바라기며 무더운 수도꼭지들이 완강하게 잠겨져있다. 웃자란 나무들이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작은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는 애완견이 보이는 것도 같고 금잔화며 채송화도 오래전 추억을 빼앗긴 채 피어있다.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금방이라도 들려올 것만 같은 적막함. 지금은 그저 지나치는 추억으로 흘러갈 뿐, 유흥가 불빛에 빼앗긴 빨간 어둠을 노략질하는 짐승들이 침범해 버린 폐교, 내란으로 내몰린 바다처럼 들떠 있는 폐교가 흉물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그러나 가던 길 멈추고 울타리 안 어린 시절의 추억을 추억하며 아빠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살아있는 아스라한 풍경이 흘러가고 있다. /정운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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