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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가을 풍경

 

따뜻하게 얼굴을 쓰다듬는 햇빛 속에서도 어린 유홍초는 떨고 있다. 올망졸망 모여서서 빨간 열매를 매달고 선 산수유나무를 올려다보는 강아지풀도 서로 곁눈질을 하며 지나간 날들을 이야기하는 담쟁이도 가을의 깊이를 알려준다. 자그마한 시골 성당 마당 가장자리 드문드문 놓인 벤치나 평상 위로 은행잎이 빼곡히 올라앉아 있고 밤나무나 느티나무 잎이 마당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성전 안은 신자들로 가득했다. 감기에 걸린 아이는 계속해서 기침을 하고 있었다. 엄마는 휴지로 아이의 입과 얼굴을 닦아 주고 있었고 드디어 아이는 기침과 함께 허연 코가 입술을 지나고 있었다. 엄마는 황급히 휴지를 찾았으나 이미 다 써버린 뒤여서 몹시 난처한 지경이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성당의 긴 의자 중간에 앉은 사람이 밖으로 나가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더욱이 기침하는 아이와 젖먹이 아기까지 두 아이를 데리고 온 여인에게는 몸을 빠져 나갈 길이 없었다.

나무계단을 내려오는 들꽃무늬가 가득한 원피스 차림의 여인의 얼굴은 평화로 가득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서 풍기는 정갈한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에게도 묘한 안도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모두가 무심히 계단을 내려오며 성가를 부르면서 줄을 서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때 예의 그 들꽃무늬 원피스의 여인이 아이 엄마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아이 엄마였다. 어떻게 남의 깨끗한 손수건에 아이 코를 풀게 할 수 있을지 그것도 남의 아이 코를 닦게 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안절부절 하고 있는 사이 여전히 웃는 얼굴로 아이 엄마의 손에 손수건을 전해주면서 아이 코가 뭐가 더러우냐면서 괜찮다고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성가를 부르는 대열에 합류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난감했던 아이 엄마는 무사히 미사에 참례하게 되었다. 모두가 돌아가고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자 아이가 누가 부르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데 아이는 멀리서도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에게 손수건을 건네준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기를 데리고 다가가보니 그 들꽃무늬 원피스의 여인은 그날 음료봉사를 하고 있었고 아이를 보니 반가운 마음에 간식으로 나온 과자를 주며 따뜻한 물을 먹이고 있었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아 기르면서 늘 박탈감에 빠져 무기력하게 살다가 뜻밖에 일로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시어머니께 속상한 이야기를 했더니 며느리를 달래면서 그래도 안 살 거 아닌 이상 참으라는 말이 서운해서 무작정 길을 나섰다 성당이 보여 들어왔다고 했다.

평소 자기는 남하고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내 물건에 누가 손대는 것도 못 참는 성격이라 늘 집에만 있어서 주위에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도 없다고 했다. 김치를 양념을 털고 물에 씻어 송송 썰어 물기를 꼭 짜 양념을 해 놓고 갈은 소고기도 볶고 표고버섯도 곱게 다져 볶아 주먹밥을 만들어 색을 맞추어 도시락에 담고 김밥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커피를 내리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란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에게 치어 피곤하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말 한 마디 곱게 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언제나 잔소리가 줄을 잇고 짜증난 얼굴로 다 팽개치고 훌쩍 떠나고 싶다는 말 대신 웃는 얼굴로 함께 소풍을 갈 생각에 마음은 벌써 온통 가을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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