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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시월의 마지막 밤

 

기온이 몹시 차다.

밤새 기온이 뚝 떨어졌고 길가에 가로수도 아름답게 물든 잎을 소리 없이 내려놨다. 그러고 보니 입동이 11월7일이다. 계절이 겨울로 들어선다는 입동, 겨울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추위가 싫은 내게는 겨울이 힘든 계절이다.

이맘때면 20대 초반에 군대생활 하던 시절이 가끔 생각난다. 한창 뜨거운 여름에 논산 훈련소에 입소해서 기초 군사교육을 받고 부산에 있는 병기학교에서 후반기 병과교육까지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이 양구에 한 병기근무대였다. 소양댐이 건설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양구로 가는 도로가 대부분 수몰되고 다시 건설한 도로가 워낙 험로여서 사람들은 대부분 춘천에서 배를 타고 양구까지 오가던 때였다. 배를 타고 간다기에 들떠 있었지만 우리 일행이 탄 배는 여객선이 아닌 시커먼 페인트칠을 한 창문도 별로 없던 잠수함 같던 배였다. 운항하는 내내 얼마나 무섭고 지루했던지 그 기억은 아직도 내 과거에서 어둡게 자리한다. 또한 양구 선착장에 내렸을 때에 그 황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논산 훈련소를 거쳐 부산에서 병기교육을 받고 최전방 양구까지 가니 계절이 별안간 바뀐 듯 했고 부산에서 본 가을이 아닌 눈앞에 풍광은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겨울이었다.

선착장에 내려서 군용트럭에 묵직한 더블백과 몸을 싣고 간 곳은 사단 신병 교육대였다. 후반기 특기병과 교육을 받고 올라온 우리는 별도의 교육은 필요치 않았지만 사단 예하부대로 가기 위해서는 거치는 곳이 신병 교육대 대기소였다.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대기병들은 저녁을 먹고 쉬는 시간에 기간병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고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그놈들이 넘어와서 잠을 자는 병사들 목을 따갔다고 하지를 않나 관물을 도둑맞으면 영창엘 가니 잘 간수하라느니 혼자 화장실 가다 그놈들에게 납치되어 끌려가니 화장실에는 절대 혼자 가지 말라하지를 않나…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고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날 밤은 겁을 잔뜩 먹고 바짝 긴장을 한 상태로 움츠려 잠을 잤으며 나의 청춘시절 중에서 잊혀 지지 않는 밤이 되었다. 옛날이 되어버린 그때 그 밤이 1976년 10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날이 밝으니 화포 정비라고 글씨가 쓰여 있는 큰 탑차가 와서 우리 일행을 사단 직할 부대인 병기 근무대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들은 젊음을 불살라가며 생활했고 겨울을 꼬박 3개나 보내고 새봄을 맞아 전역을 했다.

이맘때가 되면 그때가 생각이 나고 그리워지는 것은 그 시절이 그냥 암울하게만 보낸 것이 아니고 인생에 있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터득한 시절이며 그 인연들이 아직도 소중하기에 더욱 그러 하리라. 그때 군 생활을 같이한 동기들 11명은 지금도 매년 5월과 11월이면 부부동반을 해서 1박2일 일정으로 만난다. 제대를 하고 십 오륙년 지난 뒤 40줄에 들어설 즈음 소식이 끊어진 전우들의 모습들을 그리며 서로를 찾아서 다시 뭉친지 이십여 년이 지났다. 전국에 곳곳에 사는 전우들 덕분에 해마다 전국 투어를 하며 이번 모임은 19일에 창원에서 모이며 통영까지 들릴 모양이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선물인 11월 첫날, 새벽걸음에 씩씩하고 용감했던 전우들에 옛 모습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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