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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광활한 대자연에 피곤함도 저멀리

드넓은 초원의 양떼… 넘실대는 해안도로가 파도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이번 여행은 캠퍼밴 여행이다. 당연히 공항에 도착해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렌트카 픽업센터에 가서 캠퍼밴을 인수받는 일이었다. 우리를 태운 마우이사 셔틀은 공항의 카고(cargo)들이 모여있는 구역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미리 한국에서 예약하고 왔지만 운전면허증을 보여주고 임대계약서에 운전자들이 직접 사인하고 규정에 따라 캠퍼밴에 관한 소정의 교육도 받아야했다.

레저용 캠핑카 캠퍼밴 2대 예약
한국과 운전석위치 반대라 신경써야

가까운 마트 찾으니 착한 채소값에 놀라
주차장서 20분만에 라면 식사 준비 뚝딱

가는 길에 펼쳐진 초록 향연에 기분상쾌
화장실 벽에는 익살스런 모습에 미소

카이코우라, 고래 투어 티켓 벌써 매진
숙소서 ‘핫풀’ 욕조에 피곤 풀려하는데…

 

 

 

 


픽업센터 주차장에는 여러대의 캠퍼밴이 도열해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쥬시’ 캠퍼밴 픽업센터도 있었다. 쥬시는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차량의 크기, 가용 공간, 서비스 등을 과감히 줄여 작은 캠퍼밴을 만들었다. 대신 가격도 화끈하게 낮춰 버짓 여행을 하려는 젊은 여행자들을 타깃층으로 삼았다. 성적인 매력을 풍기는 늘씬한 아가씨 모델을 전면에 내세운 그린 색깔의 쥬시는 어디서나 눈에 잘 띈다. 품위 대신 파격을 선택한 쥬시를 보고 사람들은 “저거 캠퍼밴 맞아?”하는 호기심에 주목한다.

차량을 인수하기 전에 한 가지 더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인스트럭터 셀리를 따라가 직접 차량을 점검하고 서류에 사인하는 일이다. 모두 주차장으로 갔다. 셀리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나란히 세워진 두 대의 캠퍼밴을 일일이 점검해줬다. 흠집이나 상처가 보이면 들고 있는 차량 다이어그램에 정확히 표시를 했고 차 안에 구비된 아이템들을 일일이 확인시켜줬다.

‘캠퍼밴’은 캠핑의 숙박개념과 밴의 이동개념이 합쳐진 레저용 차량을 일컫는 말이다. 캠핑카 혹은 모터홈이라고도 부른다. 차량 내에 샤워가 가능한 화장실, 요리가 가능한 주방시설, 식탁으로 쓸 수 있는 테이블 뿐 아니라 침실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움직이는 집(moving home)’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4인용 밴을 두 대 빌렸다. 최대 6인까지 수용이 가능한 ‘비치’ 모델이다. 2종 면허를 가진 이는 누구나 부담없이 운전할 수 있는 정도의 적당한 크기다. 길이보다는 덩치가 좀 있는 편인데 2인용 침대로 사용되는 벙크가 운전석 위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쏠려서 차가 전복되지 않도록 운전할 때는 80km 규정을 잘 지켜야한다.

뉴질랜드에서 운전자가 부담을 느끼는 것은 차의 운전석이 우리와 반대이기 때문이다. 적응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지만 왼쪽 운전석에 익숙한 평소 습관을 통제하려면 처음 얼마 동안은 의식적으로 신경을 곤두세워야한다. 사고 위험률도 그만큼 높아지는 셈이다. 하여 모든 것을 커버해주는 프리미엄 인클루시브 팩으로 보험을 들었다. 전복도 포함하는 보험이다.

짐을 옮겨 실었다. 이제 출발이다. 먼저 네비를 오늘 묵게될 카이코우라 ‘알파인 홀리데이 파크’로 지정하고, 셀리가 가르쳐준대로 근처의 수퍼마켓 ‘카운트다운’을 향해 출발했다. 이전에 한번 캠퍼밴 여행을 해본 HS씨가 1호 차량에 나와 함께 탔다.
 

 

 

 


공항을 빠져나와 셀리가 말해준대로 방향을 잡았지만 ‘카운트다운’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바뀐 운전대와 익숙하지 않은 신호체계 때문에 운전자들은 자주 머뭇거렸다. 이미 공항을 지나쳐왔고, 차를 되돌리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마트 찾는 일은 포기하고 일단 북쪽 방향의 1번 고속도로로 진입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린 지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 모두 배가 고픈 상태다. 구글맵으로 가장 가까운 카운트다운을 찾았다. 카이아포이(Kaiapoi)에 있었다. 1번 고속도로를 벗어나 카이아포이로 들어갔다.

그곳의 카운트다운은 규모가 이마트 이상이었다. 마을의 규모에 비해 엄청나게 널찍하고 천장도 높은 매장을 보고 있자니 인구 밀도 적은 나라에 왔다는 것이 제대로 실감이 났다.

과일과 야채 코너에 들어서자 여자들은 모두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너무나 종류가 많은 것에 놀라고 신선함에 놀라고 가격까지 너무나 착한 것에 놀랐다. 육류가 진열된 냉장 코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기의 품질과 양에 비해 붙은 가격표가 너무나 저렴했다. 사람들은 제각기 흩어져 자기가 먹고 싶은 것들을 골라 왔다. 계산대에서 보니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로 점심을 준비했다. 한쪽 차에서는 햇반을 해체해 냄비에 넣고 익히고 한 쪽 차에서는 라면을 끓였다. 2호 차량의 책임자인 DG가 첫 요리의 책임 쉐프를 자청했다. 그의 아내(JJ)와 아들(YJ)이 반색을 했다. 집에서는 주방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는 사람이란다. 방금 산 야채와 버섯을 곁들여 제법 창의적인 라면이 완성됐다.

누구는 차 측면에 있는 차양을 펼치고 누구는 캠핑용 테이블과 의자를 꺼내 설치했다. 누구는 완성된 라면을 테이블에 내오고 누구는 종갓집 김치 한 팩을 찢어 내왔다.

정하지 않아도 서로 물어가며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 이 눈부신 팀 워크 덕분에 첫 식사인데도 20분도 안돼 남부러울 것 없는 식탁이 차려졌다.

우리의 오늘 목적지는 카이코우라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공항에서 북쪽으로 19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약 3시간이 걸린다. 다시 1번 국도에 들어서자 푸른 초원과 초원 사이를 흘러가는 시냇물, 야트막한 산과 구릉들이 나타났다. 초원에는 어디서나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구름이 낀 날씨지만 초록 들판의 싱싱함은 해하지 못했다.
 

 

 

 


“양이다!”

차에 얼굴을 바짝 대고 이국적인 풍경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시간과 공간의 벽을 넘어 새로운 땅에 입성하는 즐거움은 내 평생 누리고 또 누려도 질리지 않을 것이다. 몇 시간 전에만 해도 전혀 다른 도시 풍경 속에 있던 내가 이제는 이 초록의 싱싱함 속에 있는 것이다.

가다가 한 마을(Hurunui) 카페 앞에 차를 세웠다. 우중충한 날씨에는 커피가 더 당기는 법이다. 향도 더 짙게 퍼진다. 그런데 카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모두 공중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 벽에는 볼일 보려고 옷을 내린 사람들의 아랫도리 모습이 익살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초원 지대를 지나자 높은 산길이 이어졌다. 아찔한 계곡의 멋진 풍광을 지날 때는 비구름이 산을 덮고 급기야 비가 차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카이코우라 입성을 축하는 표지판이 서있는 고개를 헤치고 내려오자 오른쪽으로 바다가 열렸다. 해안을 달리는 동안 턱이 낮은 바다는 바로 차 옆에서 넘실거렸다. 묵직하게 가라앉은 구름은 계속 비를 뿌리고 바람은 더욱 거세졌다.

카이코우라는 고래투어가 유명하다. 배를 타고 이동해 해저에서 올라오는 고래와 계절에 따라 연안을 회유하는 고래들을 관찰하는 투어다. 고래를 보기 위해 애초 이곳을 루트에 넣었지만 애석하게도 투어 티켓은 벌써 동이 나고 없었다. 운이 좋아 구입을 했다고 해도 이런 날씨에는 투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카이코우라 앞바다는 고래 중에서도 향유고래를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수컷의 경우 길이가 15~20m, 몸무게가 35~42t에 이른다. 유유히 움직이며 내뿜는 물줄기와 우아한 지느러미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떨린다. 이번에는 고래투어를 하지 못해 아쉽지만 그래도 카이코우라는 여전히 매력있는 도시다. 내일 아침 멋진 해안 반도 트랙을 걷고 크레이피쉬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방문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천천히 어둠이 내리는 바다를 만끽하며 카이코우라에 들어섰다. 겨울의 끝자락에 있는 이곳은 저녁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길지 않은 마을을 지나 끝자락에 도달하니 ‘알파인 할리데이 파크’ 사인이 나왔다. 가장 안전하고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인증 숙소인 ‘탑텐 할리데이 파크’를 마다하고 이곳으로 첫날 숙소를 정한 건 핫풀(hot pool) 때문이었다.

밤을 새워 비행기를 타고 와서 바로 운전해서 인지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식사 준비도 미루고 부랴부랴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챙겨 달려간 '핫풀'을 보고는 너무나 실망을 했다.<계속>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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