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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미상불(未嘗不)

 

가을비가 그치자 기온이 갑자기 곤두박질을 치고 겨울이 온 것처럼 쌀쌀해 저절로 웅크리고 다닐 지경이 되어 그렇게 싫어하던 햇빛이 드는 자리로 골라 앉는다. 남은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지는 삶은 계란을 호호 불어가며 먹다가 불현듯 예전에 들은 강의가 떠오른다. 지금은 우리 동네 같은 면 소재지에도 마트가 세 개씩이나 되어 영세 상인이나 노점상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옛날에는 가게 하나 마련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들이 노점상을 하고 조금 여력이 되는 사람들은 트럭에 먹거리나 생필품을 싣고 주택가나 산간지역을 찾아다니며 장사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장에 갈 시간도 없고 딱히 살 것도 마땅치 않았던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시기부터 행상을 하는 트럭에도 마이크와 확성기를 장착하고 고객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더라도 목청껏 부르느라 힘들이지 않고도 사람들이 그 소리를 알아듣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찾아왔다.

트럭에 가득 계란을 싣고 여기저기 다니며 확성기로 손님을 불러도 그날따라 찾아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시간은 가고 계란장수도 점점 힘이 빠져도 트럭에 실린 계란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공치는 날이구나 하고 마음을 비우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계란을 싣고 속도를 내지도 못하고 무거운 귀갓길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광등이 불빛을 앞세우고 경찰차가 계란차의 번호를 부르며 정차할 것을 명령한다. 하는 수 없이 갓길에 차를 세우자 교통경찰로부터 위반사실을 통보받았다. 벌금 이만 원이라는 말에 하늘이 머리 위로 무너졌다. 하루 종일 점심도 굶고 돌아다닌 건 그렇다 치더라도 내일은 밀린 공납금 꼭 해준다고 억지로 학교 보낸 아들의 뒷모습이 목젖을 타고 올라왔다. 한참을 사정사정을 한 끝에 원래는 이만 원인데 하도 사정이 딱해보여 만 오천 원으로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주머니에서 살점같은 만 원권 두 장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렇게도 인정 많고 자신의 처지를 동정해마지 않던 마음씨 좋은 교통경찰은 오천 원을 거슬러 주지 않고 이만 원을 받아 챙겨 그대로 경찰차로 달아났다. 트럭에 시동을 거는 계란장수의 눈은 찰나에 불이 번졌다.

“경찰차 우측으로! 경찰차 우측으로!”

어둠이 내리는 도로에 계란장수의 음성이 울려퍼졌다. 어느 시대에 경찰차가 계란차에 쫓기는 일이 있고 또 계란차가 경찰차를 쫓아가며 정차할 것을 명령하는 듣도 보도 못한 일이 있을까? 때마침 도로에 있던 많은 차량과 길을 가던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진풍경을 그대로 놓칠 리가 없었다. 당황한 경찰이 황급하게 차를 세우더니 이번에는 동료 경찰과 함께 계란차로 다가왔다. 두 경찰의 말인즉 돈이 탐이 나서가 아니라 주머니에 오천 원이 없어서 차에 가보니 동료 경찰이 다른 단속 건이 있어 그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이라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오천 원을 돌려주었다.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말은 가끔은 듣기도 한다. 위정자들에게 주어진 권력은 임기동안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사실을 한 시라도 잊는다면 오천 원을 돌려주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추한 경찰의 모습이 자신의 배역으로 주어지게 되는 일을 피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주변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경찰관이 어려운 여건에도 국민의 지팡이로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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