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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만추(晩秋) 그리고…

 

어느덧 가을은 끝자락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자주 온 탓일까. 영동 산간의 기온이 영하 7~8도를 가리키고 첫 얼음 소식이 날아든 지 오래다. 휘황하던 설악산의 단풍은 이제 찾아 볼 수가 없다. 대신 강원도 산 능선마다 상고대가 덮이고 일부 계곡 깊은 등산로엔 첫눈이 쌓였다. 부지런한 이들은 그 눈을 밟고 지난 지도 꽤 됐다. 어젠 수도권의 기온마저 영하에 가깝게 떨어졌다, 거리의 낙엽을 몰고 다니는 바람이 옷깃을 더욱 파고든다. 몸은 춥고 마음은 스산하다. 역시 ‘가는 세월’ 때문인가? 그러다 나라꼴을 걱정하는 맘이 더해지니 더욱 심난하다.

요즘 어딜 둘러봐도 만추(晩秋)의 계절임을 실감한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바람에 전신을 내맡겨 버린 나무들이 온 몸을 떨고 있다. 그렇게 떨릴 때마다 낙엽이 물결처럼 여울지며 쏟아져 내린다. 떨어져 내리면서 공중을 선회하는 나뭇잎들. 애처롭다. 색깔도, 모습도, 자태도. 자기의 분신을 떠나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절절한 아픔에 몸 안의 모든 진액들이 쏟아져서인지 처절하기까지 하다. 엊그제 일처럼 눈앞에 선했던 푸름의 향연은 오간데 없고 눈을 사로잡았던 형형색색의 화려함도 윤기를 잃은 낙엽들이 길가에 나뒹굴며 서둘러 겨울을 재촉한다.

떨어진 낙엽을 보면 그 빛깔 속에는 한 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서려 있는 듯해 슬프고 아름답다. 체념과 겸허함이 녹아 있는 것도 같아 숙연해지기도 한다. 어느 시인은 ‘어깨에 내려앉은 한 잎의 낙엽에서도 인생의 무게를 느꼈다’고 했다. 떨어져 내리는 그 가벼운 마른 잎 하나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어찌 인생의 무게와 비교될 수 있을까. 하지만 볼품없는 작은 이파리들도 한때 성숙을 향한 함성으로 가득했고, 모진 비바람 속에서 서로가 살갗을 비벼대며 견뎌낸 수많은 날들이 있었다는 의미를 생각하면 공감이 간다.

또 어우러져 마음껏 그 자태를 뽐내려고 하다가도, 자신보다는 나무를 위해 아낌없이 주고 가벼워질 대로 가벼워져 떨어지는 모습. 그래서 가냘프게 흩날리며 때론 힘없이 떨어지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시인으로 만들고 사상가로 키웠는지 모른다. 그래서 혹자는 낙엽을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가장 가볍게 떨어져 끝까지 아름다움을 남기고 가는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런 의미를 되새기면 다음과 같은 감상도 생긴다. “욕망들을 잠재우고, 남아 있는 삶을 본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분히 준비 하는 낙엽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과연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갑자기 낙엽보다 못한 인간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추의 낙엽을 보며, 탐욕에 물들어 줄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 군상들이 너무 많이 생각나서다.

낙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또한 의미가 심장하다. 낙엽 뒤에는 수많은 삶의 교훈이 서려 있어서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100일을 못 가며(인불백일호·人不百日好), 아름다운 꽃도 10일이 지나면 시들게 마련이고(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긴 권세도 10년을 못 간다(세불십년장·勢不十年長). 권력을 향해 질주한 대통령과 그 실세들. 불빛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권력의 비극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손잡이 없는 양날의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른 국정농단의 주역들.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진다는 낙엽에 비유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만추의 산자락에도 삶과 죽음이 존재한다. 수명을 다하고 산허리를 베고 누워 있는 것들은 그 자리에서 썩어 다음 생을 위한 하나의 자양분이 되어 주며, 자신의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그 터 위에 또 하나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이렇게 소리 없이 반복되는 아름다운 순환을 통해 낙엽 쌓인 산도 질서가 유지되는데 지존(至尊)의 거처는 움직임이 없다.

늦가을의 밤을, 깨닫는 힘이 없는 물건이라는 뜻의 무정물(無情物)에 가깝다고들 한다. 죽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산 것도 파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다. 요즘 ‘무(無)’로 가라앉아 있는 청와대가 이 모양새다.

앞으로 만추지정(晩秋之情)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추워질 것이다. 가는 가을이 아쉬운 것은 비에 젖어 길 위에 나뒹구는 나뭇잎의 애잔한 모습과 추위 때문이 아니다. 가을과 함께 가는 세월 때문일 것이다. 내년에도 가을은 오겠지만, 내년 가을은 올가을과 또 다른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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