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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희한한 학교, ‘모이소’ 학교

 

새벽 이불 속이 따스하다. 창문으로 얼비치는 하늘을 더듬다 말고 핸드폰이 궁금해졌다. ‘오늘 담임선생님은 누굴까? 농띠그룹 회장직을 맡고 있다는 그 선배님일까? 아니면 내 친구 금와, 그도 아니면 예쁜 수영후배?’ 여기까지 생각하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열었다.

아, 오늘의 담임은 17회 선배님. 오늘 공부(숙제)의 주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칭찬릴레이. 이미 수업은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솔선수범 궂은 일 마다않는 후배도 칭찬하고, 치매환자 시모님 병간호에도 환한 미소 잃지 않는 큰 언니, 언제나 푸짐한 너스레로 웃음을 선물해준다는 친구까지. 각자 제출하는 숙제로 봇물 터지듯 흘러넘치는 칭찬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했던가, 나에게 하는 칭찬이 아닌데도 마치 내가 듣는 칭찬인 듯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출근 준비를 하고 틈틈이 날개달린 칭찬을 확인하며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울컥, 감동받기도 하다 저녁을 맞으면 담임선생님이 알아서 종례를 해 주시는 모이소 학교. 얼마 전 내가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입학하게 된 참, 희한한 학교다.

시골 중학교 서울 총 동문들의 밴드 학교. 학생들은 연세 드신 선배부터 파릇파릇한 후배들까지. 등하교가 자유로운 21세기 최첨단 자유학교유형인 ‘모이소’ 학교는 담임도 릴레이로 진행되고 있다. 잊혀져가는 우리 시골 사투리 되짚어보기, 경험한 여행지 추천, 미소가 아름다운 사진 올리기, 감성 표현 시 쓰기까지. 갖가지 주제가 그날그날의 숙제로 오른다. 호응하는 학생들의 반응 또한 시끌벅적하다.

언제부턴가 문득문득 엄습해오는 고독의 진원지. 그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점점 멀어져가는 그 기억들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잇몸 드러내고 환하게 웃어볼 일 잘 없는 매일매일의 일에 휘둘리는 일상. 아마 숱한 선후배들도 그런 현실을 극복해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나고 자란 그 시골에 대한 오래된 추억들을 더듬으며 각자의 그리움을 각자의 외로움을 달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얼굴 마주하지 않고 대화만 나누는 밴드학교인 만큼 처음엔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의 담임이 살갑게 후배로, 선배로 배려하고 챙겨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니 금방 편하게 등하교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재는 와 그래 싱거운 소리를 하능기요?”

“아, 오늘은 주제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든 농띠학생들이 몇 명 있어서 교장선생님 자격으로 일부 댓글을 삭제합니데이. 정학이나 근신처리는 종례시간에 공지하겠심더.”

지나친 열정으로 흥분한 나머지 공부하다말고 말의 선을 넘어버린 학생이 나오자 교장선생님이 익숙한 사투리로 경고 메시지를 남기셨다. 바로 이어지는 사과의 메시지 등등. 결국엔 훈훈하게 결론지어주는 교장, 담임, 학생들까지 영락없는 그 옛날 초등학교 교실 같다.

어깨를 짓누르는 직책도, 가르치는 자의 무게감도,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모두 내려놓고 부담 없이 천진난만한 학생이 될 수 있는 학교. 감성적 효율성으로 따지면 21세기 최고의 모이소 학교. 오늘 모이소 학교는 공휴일이라 숙제 없이 마음껏 들락거리며 놀아도 된다고 했다. 마음껏, 들락거리며,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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