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최승자
담배 한 대 피우며
한 십 년이 흘렀다
그동안 흐른 것은
대서양도 아니었고
태평양도 아니었다
다만 십 년이라는 시간 속을
담배 한 대 길이의 시간 속을
새 한 마리가 폴짝
건너뛰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미래의 시간들은
銀가루처럼 쏟아져 내린다)
십 년이 어디론가 증발했다. 담배 한 대 피운 것밖에 없는데, 십 년이 왔다갔다. 부피로 따지자면 지구만큼일 것도 같고 깊이로 따지자면 대양의 바닥에 닿을 것 같은 십 년. 그 속에서 누군가를 부르고 싶으면 불러낼 수 있고, 무엇인가를 느끼고 싶으면 느끼기도 하며. 그런 것들에 밑줄을 긋고 가두었다가 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담배 한 대 길이로 다가와 연기로 흩어지고 있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하나 생기고, 구멍 사이로 구름과 새가 바람을 몰고 와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런데 또 내일은 또 다른 십 년을 만들기 위해 빛들을 방사하고 있다. 그 입구에서 잠시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없고 그저 한 마리 새가 나무의 가지와 가지 사이를 건너뛰고 있을 뿐. /김유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