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생활에세이]향기 나는 고령화(花)

 

하늘 가득 날아 내리는 첫눈을 보고서야 베란다 화분을 불러들이기로 했다. 여름내 훌쩍 키를 키운 파키라 넓은 잎, 산세베리아 두툼한 허리, 벤자민 고무나무 자잘한 이파리까지. 여린 화분 겨울준비를 하고 마주한 따끈한 꽃차에서 마당 한쪽 흐드러지게 피고 지던 어린 날 그 꽃밭, 향기가 났다.

울퉁불퉁한 돌 몇 개로 나누어진 화단과 마당의 경계선 사이로 속살거리는 채송화, 까만 씨앗이 도톰했던 봉선화, 혼자서도 예쁜 백일홍까지. 봄 꽃에 이어 여름 꽃, 가을 꽃으로 터져 오르던 향긋한 기억. 그렇게 철따라 꽃은 달라졌고 향기도 느낌도 많이 달랐었다. 마치 사람의 꽃처럼 말이다. 어린 날의 꿈 많은 봄꽃을 거쳐 혈기왕성한 청년기의 여름 꽃에 이어 결과물 풍성한 가을 장년기를 거쳐 마침내 슬며시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절절이 가슴 따스해져야 피우는 노년기의 그 겨울 꽃까지 말이다.

사람의 겨울 꽃, 그 꽃을 나는 ‘고령화(花)’라 칭하고 싶다. 숱한 봄, 여름, 가을의 뜨거운 시간들 다 가슴에 품은 채 뭉긋한 향기 피울 줄 아는 그 말없음의 꽃. 그 어떤 꽃보다 사랑이라는 거름이 필요한, 그래서 함께 피우면 더 좋은 꽃. 마지막 생의 열정을 다해 피우는 꽃이기에 꽃대 올리기 전 무엇보다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백세시대를 맞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이 되어버린 고령화. 우리나라는 2020년이면 65세 인구가 20%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 사회로 들어간다는데. 이미 어우러져 피기 시작한 ‘고령화’의 꽃밭에선 갖가지 향이 번지고 있다.

5년 째 함께 공부를 하고 있는 팔순을 훌쩍 넘기신 노시인의 모습에서 나는 참, 멋스러운 고령화(花)의 향을 느끼곤 한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갖가지 봉사활동과 운동 등, 어쩌면 나이를 의식하지 않는 그분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인 그 젊은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버드 대학교 심리학과에서는 1979년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을 한 적이 있다. 70~80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20년 전(1959년)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청소, 설거지 등 집안일을 직접 해보게 하는 실험. 20년 전의 정치, 사회, 스포츠 등을 현재형으로 이야기하기, 20년 전에 개봉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시청하기의 규칙을 지키며 일주일을 살게 했다. 그 결과 8명 노인들 모두 시력, 청력, 기억력, 지능, 악력 등이 신체나이 50대 수준으로 향상되었다고 한다. 나이는 결국, 그들의 몸 이전에 생각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 나이에 뭘 또 배우겠니?” 라며 순간으로 남은 청춘을 추억만 하기에는 너무나 긴 비 청춘의 날들. 자식들 다 객지로 보내고 시골에서 고향 지키며 자식들의 안식처가 되어주시는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도심의 틀에 익숙해 도시에 남아 청계천 걷기운동에 재미를 붙이신 선배님은 선배님대로. 정년퇴임을 하고도 오랜 소원이던 색소폰을 배워 아마추어 공연까지 다니신다는 친구의 이모까지. 나이라는 한계로부터 스스로를 묶어두지 않고 자유롭게 자기 삶을 즐길 줄 아는 그들. 그들이야말로 아름다운 고령화(花)의 꽃밭을 제대로 가꾸고 계시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시작이 반이라 했든가, 아득히 멀어져간 청춘바라기로만 살아온 나도 늦었지만 이제라도 준비해야겠다. 향기 나는 나의 고령화(花)를 위하여.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