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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한 해의 끝자락에서

 

바람이 분다. 사나운 바람이다. 나무가 흔들리고 창문 틈으로 소방차 가는 소리가 난다. 잔뜩 웅크린 행인들과 서둘러 문을 닫은 점포가 눈에 띈다. 예년 같으면 성탄절이다 송년회다 하면서 북적였을 거리가 한산하다.

추워진 날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녹록치 않은 주머니 사정도 한몫 했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춥기만 한 한해의 끝자락이다. 돌아보면 참으로 팍팍한 한해였다. 침체된 경기로 장사가 안돼서 힘들었고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건강에도 주황색불이 껌뻑인다.

요즘은 뉴스를 보는 것도 겁이 난다. 여기저기서 붉어지는 국정농단 사건들이며 비상사태로 확대된 AI로 인한 피해와 그로인한 서민경제의 어려움에 화가 치민다. 그 흔하던 계란마저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상황까지 왔으니 말이다. 마트에서 손님은 계란을 두 판 사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마트 측에서는 규정상 한 판만 가져갈 수 있다고 실랑이하는 것을 보았다. 닭은 가격이 하락했는데 계란은 많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계란 진열장이 헐렁하다. 손주에게 하루에 두 알씩 계란을 먹였는데 이제 한 알로 줄여야겠다는 언니의 말에 참담함이 느껴진다. 툭하면 터지는 몇 십억, 몇 백억이 뉘 집 강아지 이름처럼 불리는 요즘에 두 알 먹이던 계란을 한 알로 줄여야하는 것이 서민들의 현실이다.

올해 유난히 화두가 되었던 것이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논란이다. 중상층쯤 될 것 같은 은수저를 검색해보니 부모가 건실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적당히 일해도 결혼하고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고 혼기가 되면 부모가 집 사주고 아이도 봐주고 노후준비도 돼 있고 나중에 아파트 한 채 정도 상속해 줄 수 있으면 은수저라고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요즘 같은 세상에 부채 없고 자기 집 있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서 평범하게 살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다. 아니 죽을 힘 다해 키운 자식이 제 밥벌이 하고 앞가림만 제대로 해도 고마운 일이다.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가게 문을 열고 있어도 손님은커녕 전화 한 통도 오지 않는 날이 숱하다. 개점휴업 같은 날들의 연속이다. 악기는 생활의 필수품이 아니라 선택제이기 때문에 더 타격이 큰 것 같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계절이 바뀌면 조율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지금은 피아노가 고장나기 전에는 조율도 잘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매장도 많이 줄었고 직원을 쓰지 않고 가족끼리 꾸려나가는 곳이 대부분이다. 악기를 조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살이를 조율해야 숨 쉬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얼마 전 사십 대 이웃이 방 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목숨을 끊었다. 횟집을 운영하다가 식당이 어려워지자 카드 대출을 받았고 캐피탈이며 사채 등으로 돌려막기를 하다가 끝내는 자식을 부탁한다는 유서 한 장 남겨놓고 세상을 버렸다.

초등학생인 자식 둘을 남겨두고 세상을 버리기까지 심적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감히 상상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빠질 때가 많다. 하루를 살면 하루만큼의 빚이 늘어나는 세상, 최선을 다해 살려고 발버둥치지만 그 몸부림이 허공에서 흔들릴 때의 상실감은 겪어본 자만의 고통일 것이다.

정말이지 다사다난했던 해이다. 지는 해와 함께 지금 겪는 어려움도 줄었으면 좋겠다, 희망을 말할 수 있고 살아갈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서로를 다독여 줄 여유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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