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병신년(丙申年)을 보내며
[정준성칼럼]병신년(丙申年)을 보내며
  • 경기신문
  • 승인 2016.12.2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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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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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主筆)

다행히 시간은 멈추지 않고 세월을 앞세우고 간다. 그래서 2016 병신년도 12월 달력 끝자락에 매달렸다. 그 어느 해보다 기록할 사건을 많이 남겼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는 데는 예외가 없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너무 큰일들이 일어났던 한 해였다. 많은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고, 아파했다. 그중 분노한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다. 결코 짧지 않은 두 달여 기간 동안 매주 약 100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누계만도 1000만 명에 가깝다. 그들이 모인 광장은 어느 불길보다 뜨거웠고 어떤 힘보다 강력했다.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막고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려는 이 같은 저항은 대통령 탄핵소추를 이끌어냈고 이 땅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부각시켰다. ‘암울한 혼돈의 세월’이라는 대가도 치르고 있으나 희망을 성취하기 위한 고통으로, 모두가 훌륭히 견뎌내고 있다.

세상은 이처럼 변하는데 지나온 시간들, 올해는 아무리 곱씹어 봐도 나에겐 자랑거리가 없다. 나름 분주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성취한 것 또한 별반 없다. 어찌 보면 무의미한 한 해였다. 나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줘도 마찬가지다. 너그러운 눈빛으로 보려 해도 역시 후회가 더 많다. 360여 일의 여정이 때론 화려한 듯했으나 곰곰이 뜯어보면 오히려 초라함이 더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게다.

내 스스로 올해를 얼마나 멋지게 살았는지 다시 돌아보았다. 혹여 ‘남을 탓하지 않았나’ 반성하며 1년 동안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도 되짚어 봤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행복을 안겨줬는지도 스스로 떠올려 봤다. 부쩍 잠을 설치는 밤이 많아지는 요즘은 더 그랬다. 더불어 ‘오만가지 잡생각’도 함께 하면서 1년을 보낸 나를 만나 보았지만 역시 ‘아니올시다’다.

그러면서도 어느덧 ‘불혹’과 ‘약관’을 더한 나이가 지났지만 한 해의 끝이 다가올수록 공연히 마음만 바빠진다. 한 살이 더해진다는 조급함도 있고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한 아쉬움이 큰 탓이다. 연 초에 기원했던 소망들을 되돌아 봤다. 행복을 최우선순위에 놓았었다. 가정의 화목함도 그중 하나였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이루어져 넉넉한 삶도 바랐다. 또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랑을 키워가며 여유를 갖게 해달라는 것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기원은 희망사항으로 끝난 것 같다. 오히려 삶에 짓눌려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바람같이 지나고 말았다. 돌아보면 모두가 ‘내 탓’이란 생각이다. 스스로가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행복을 희망으로 삼고 1년을 노력해야 했으나 그러하지 못해서다. ‘한 해의 마지막에 가서 그 해의 처음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고 하는데 매년 비슷한 우를 범하고 있으면서 날이 갈수록 의지는 약해지고 아무리 돌아보아도 지나간 날짜조차 가물가물할 뿐이다. 하루도, 일년도, 인생도 그리 길지 못하니 겉과 속을 같게 하여 정말 부지런히 살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잃어버리는 게 있으면 분명 얻는 것이 있는 게 우리네 인생사다. 때문에 가는 해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실망으로만 보낼 수는 없다. 최소한 잃어버린 것들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도 한 얻음일 수 있어서다. 내년엔 올해보다 더 많은 희망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세상엔 좌절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주저앉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극복하고 재기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곡절을 겪기도 하고, 잘잘못을 제대로 가리지 못한 경우도 물론 있을 것이지만, 또다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성취와 행복은 뒤따라오게 마련이다.

얼마 남지 않았다. 짧은 한 해의 마지막 12월. 회상과 정리의 시간은 아직도 충분한 것 같다. 기왕 지나간 세월이니 힘들고 어렵고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좋다. 세상이 사람 사는 곳인 만큼 고마운 사람에 대한 감사와 축복을 나누는 일 하나라도 실천해 보자. 생각 속에 쌓아 놓지만 말고 주변 사람과 작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지금 표현한다면 이름도 망측한 병신년이 따뜻해지고, 마음이 훨씬 가벼워지지 않을까.

아울러 올 한 해 가슴 속에 남은 상처와 슬픔을 훌훌 털어내 버리고 밝고 희망찬 새해를 또 다시 설계했으면 좋겠다. 굳이 거창한 목표를 내세울 필요도 없다. 꼭 이루려 하지 않아도 된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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