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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씨름을 가장 좋아한 임금은 고려 충혜왕이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고려사에는 “왕이 된 첫 해(1331년) 제일 먼저 한 것이 나랏일을 젖혀둔 채 아랫것(내시)들과 더불어 씨름을 벌였다”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용사들에게 밤낮 각저희(角抵戱·씨름의 일종)를 벌이게 해 구경했으며, 승리자에게 많은 베를 상으로 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씨름이 우리 문헌에 나타난 최초의 글이며 주인공 충혜왕은, 지금으로 치면 ‘씨름광팬’이었던 셈이다.

삼국시대부터 씨름을 가장 즐긴 민족은 고구려다. 4세기경 만든 고분 각저총(角抵塚) 주실(主室) 석벽에 두 사람이 맞붙어서 씨름하는 모습과 심판하는 사람이 서 있는 그림을 남긴 것만 보아도 그렇다.

씨름이 대중화 된 것은 조선시대다. 김홍도(金弘道)의 풍속도에도 등장했듯 백성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나 성행했다. 또 백성만 즐긴 것이 아니다. 왕과 궁궐의 대신들도 좋아했다. 특히 세종의 씨름사랑은 각별했다고 한다. 세종실록엔 이 같은 내용이 있다. “한강변과 남산등지에서 자주 씨름판을 벌이라 지시하고 중국 사신들에게도 보였다. 또 경회루에서 씨름을 시키고 상을 주었으며, 무사의 무예 연습 종목에 씨름을 넣었다. 그리고 궁궐에서는 씨름꾼을 용사라 부르며 특별대우를 했다. 왕을 지키는 갑사도 이 가운데서 뽑았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씨름을 즐겼는지는 정확치 않다. 하지만 예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 기예 중 하나로, 두 사람이 샅바나 띠 또는 바지의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겨루어 상대를 먼저 땅에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결정하는 민속놀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다. 옛 중국 문헌엔 이 같은 씨름을 ‘고려기(高麗技)’ 또는 ‘요교( )’로 적고 있다. ‘요’는 ‘붙들다’는 뜻이고 ‘교’는 ‘종아리 교’자로, ‘다리를 붙들고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놀이’라는 뜻이다.

어제(4일) 우리 고유의 전통놀이 ‘씨름’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아울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한다고 한다. 고대부터 지구상의 가장 많은 민족이 즐겨왔다는 씨름 중 기예가 단연 으뜸이라는 것을 증명할 좋은 기회여서 반갑다. /정준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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