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정준성칼럼]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 경기신문
  • 승인 2017.01.10 19:00
  • 댓글 0
  • 전자신문  16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주필(主筆)

오래된 지인이 있다. 만난 지 30년이 넘었다. 그래서 친구라 부르기도 한다. 나는 그와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시시콜콜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안주 삼는다. 요즘은 ‘씹기도 좋고 맛도 괜찮다’는 대통령 탄핵과 최순실, 대선주자에 관한 내용들이 안주거리다.

하지만 사실 그 친구는 정치이야기는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언론에 몸담고 있어서인지 보조를 맞추는 수준이지 울분을 토하거나 적극적인 의사 표시는 안 하는 편이다. 대신 인생에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나 삶을 변화시킬 만한 인문학적 대화를 더 선호한다. 그리고 대화를 하다보면 독서량이 많아서인지 알고 있는 지식의 깊이에 가끔 놀랄 때가 있다.

이런 그에게 한 가지 묘한 아집이 있다.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지적하면 좀처럼 수긍을 하지 않는 버릇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토마토가 과일인가 채소인가’를 놓고 그 친구는 과일, 난 채소를 주장하다 요즘 흔한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사실이 확인돼도 여간해서 한번에 ‘아 그렇구나~’ 하지 않는다. 그리곤 얄밉게도 꼭 한마디 날린다. ‘아님 말고’.

만약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한 뒤 공신력을 부여 받은 사람과 기관 단체에서 이 같은 자세로 일관한다면 어떨까. 괴담이 난무하고 혼란이 가중되는 무책임한 사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사회 자화상이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정치·경제·문화 전반에 걸쳐 ‘아니면 말고’ 식의 한탕주의 발언과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가십 정보가 넘쳐나고 있어서 그렇다.

확산 속도와 범위가 빨라지고 넓어지고 있는 이른바 ‘찌라시 소식통’들을 비롯 유튜브 등을 보면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 거기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며 특종 경쟁을 가속화 하고 있는 종편들의 ‘카더라’식 보도와 ‘토론’도 가세, 혼돈을 부추기고 있다. 오해, 갈등, 냉소를 불러일으키며 독설의 배설구로 전락시킨 이 같은 일부 언론들은 그동안 인터넷에서 나도는 풍문도 검증 없이 주요 뉴스에 등장시키는 등 많은 오보들을 양산했다. 그러나 정정보도조차 사라져버렸다. 설령 며칠 후 오보로 판명되더라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을 정도다.

요즘은 ‘언론 때문에 나라 망한다’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사회적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이 정보에 대한 불신임에도 이를 타파해야할 언론이 오히려 잘못된 정보를 양산시키는 기관으로 전락해서라고 한다. 잘 알다시피 인터넷의 보편화로 종이 신문은 줄었지만 언론사는 증가했다. 따라서 시사나 정보 분야까지 진실 여부를 떠나 자극적인 소재를 동원하며 시청률이나 구독자를 넓히는 게 요즘 언론 패턴이다. 그러다 보니 방송 패널로 등장하는 전문가들이 늘어놓는 말들은 진위여부를 따지기 전에 듣기조차 힘겨울 지경이다. 또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망라한 일상생활과 밀접한 건강이나 식품, 운동 정보까지 자극과 과장으로 각색되기 일쑤다. 그러다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아니면 말고’ 식이다. 참 편리한(?) 세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아니면 말고’에 대해선 20대 국회 국감도 비껴가지 못한다. 물론 비선실세의 국정농단과 박근혜정부의 무능에 대해 많은 진실을 파헤치는 순기능도 했다. 그러나 첫 국감부터 여야는 막말과 묻지마식 폭로라는 추태를 반복했다. 엊그제 끝난 7차례에 걸친 최순실 국감도 초반부터 파행의 연속이었고 일부 의원들의 면책 특권을 이용한 ‘아니면 말고’ 주장이 난무하면서 국감의 격 자체를 떨어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이 오히려 ‘아니면 말고’라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나 다름없다. 국민은 그러한 권리를 인정하지도, 부여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니면 말고’는 앞으로가 더욱 문제다. 대통령 탄핵 결정과 상관없이 정치권에선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됐고 이미 네거티브 공세와 정치 공작이 난무하고 있어서다.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대권주자를 비롯 전직 유엔 사무총장, 잠룡이라 불리는 현직 도지사와 시장,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주자들이 넘쳐나고 있으나 레이스가 시작되기도 전 한탕주의식 폭로전이 본격화되고 있어서다.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데, 거기에 포퓰리즘 정책도 봇물처럼 쏟아질 조짐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현실이며 미래인지 국민들은 벌써부터 헷갈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