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그렇기야 하랴
/김창희
후광 가득한 매화꽃 한그루 통째로 뽑아
내 앞뜰에 심은들 내가 다시 피기야 하랴
다시는 오지 않을 내 봄날에
산적같이 억센 사내 앞에서 꼬리 좀 흔든들 무슨 잘못이랴
햇무리 가득 베란다에 들이고 부르스를 춘들
서쪽으로 지던 해가 동쪽으로 다시가랴
술가지 타닥타닥 타는 아궁이에
고구마 감자 한양 푼 넣고 노릇노릇 구워 주억거리며
혼자 배 터지게 다 먹은 등굽은 허리 확 펴져 청춘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으랴
들풀처럼 다시일어나 차마 흔들리기야 하랴
그렇다고 내가 저문 노을처럼 쉬이 지기야 하랴
휘어진 고목 등걸처럼 눕기야 하랴
쉬이 눈 감기야 하랴
차마 그렇기야 하랴
-계간 ‘문학과행동’ / 2016년·가을호
새해가 되었다, 중년이 넘어서고부터 실체도 없는 세월에 스스로 정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더러 억울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했다. 이 시는 세월의 ‘허무(虛無)’를 허무해하는 노래를 하는 듯하지만 ‘미련’이라는 시간을 통해 그냥 죽지 않는 생기있는 ‘나이듦’을 노래하고 있다. 다시 오지 않을 봄날이라도 결코 저문 노을처럼 지지 않는, 휘어진 고목 등걸처럼 쉬 눕지 않는, 쉬 사그라지지 않는 청춘을 노래하는 것이다. 한 살을 더 먹었다고 해서 내 마음의 봄날을 굳이 늦가을로 치장할 필요는 없다. 설레이는 새 봄을 그리워하며 마음깊이 매화꽃도 심고 더러 마음의 아궁이에 노릇노릇 고구마도 구워먹는 그래서 겨울을 이기고 세월을 이기고 쉬 눈감지 않는 하얀 청춘을 버릴 수야 있으랴. 아무리 세월이 쌓여도 차마 그렇기야 하랴. /김윤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