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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박물관·파리도서관 부럽지 않다 프랑스 문예의 보고

테마여행가가 들려주는 프랑스 -샹티이 성 (Le Chateau de Chantilly)

 

 

16세기 르네상스양식으로 건축
19세기 다시 개축 등으로 모습 갖춰

마지막 왕 루이 필립 다섯째 아들
오말 공작에게 성의 소유권 넘어가

가족 모두 잃고 직계후계자도 없어
불행 잊고자 프랑스 작품·고화 등 수집
프랑스 학술원에 기증하며 일반 공개


아름다운 경치, 공원, 박물관을 자랑하는 ‘샹티이 성’은 프랑스의 관광 명소 중에서 손꼽힐 만하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성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샹티이 성은 깊은 역사 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과 녹음이 우거진 드넓은 정원, 프랑스 경마의 수도라 불릴 만큼 잘 발달돼 있는 경마장, 마사, 말 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1671년 왕 루이 14세가 이곳에 초대된 날 유명한 요리사 바뗄(Vatel)이 요리 재료 배달의 지연으로 왕의 식사가 준비 되지 못해 자살한 곳이기도 하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크림 샹티이(Creme Chantilly)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샹티이 성은 파리 주변 지역에서 가장 큰 세 개의 숲(샹티이Chantilly, 아라트Halatte, 에흐므농빌Ermenonville)과 인접한 7천800ha 면적에 세워져 있고, ‘루브르 박물관’ 다음으로 수많은 중요한 걸작들과 희귀 필사본, 고가의 고서를 소장한 ‘꽁데 박물관(Musee Conde)’은 오말 공작의 공헌으로 만들어진다.(회화 1천점, 스케치 2천500점, 판화 2천500점, 필사본 1천500점, 고서 3만권)

1884년 직계 후계자가 없는 ‘오말 공작’은 자신의 재산과 그 동안 수집한 모든 예술품, 회화, 고서 등을 프랑스 학술원에 기증하면서 현 상태 그대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절대로 작품이 외부로 나가지 않는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 역사

이 곳은 왕과 사촌간인 부르봉-꽁데 가문이 소유했는데, 그랑 꽁데(1622-1686)는 앙드레 르 노트르에게 의뢰해 정원에 운하를 만들었고, 당대의 유명한 문인과 예술가들을 초대해 무도회나 불꽃놀이를 개최한다.

‘부르봉-꽁데 왕자’로 불리는 손자 루이-앙리는 루이 15세의 총리로 재임하면서, 18세기 건축의 걸작인 ‘큰 마구간(Grandes Ecuries)’을 쟝 오베르에게 의뢰한다. 또한 원숭이가 인간의 역할을 하는 벽화로 장식된 ‘원숭이 방(Singeries)’을 만들도록 주문했으며 경비병실에 전시되고 있는 사냥 장면의 작품들을 우드리에게 의뢰한다.

‘꽁데 왕자’로 불리는 루이-죠셉(1736-1818)은 현재 ‘프랑스 학술원’으로 사용되고 있는 ‘엉기엥 성(Chateau d`Enghien)’을 만들고, 영국 양식과 중국 양식이 혼재한 정원을 만든다. 정원에 시골풍의 초옥 5채를 만들었는데,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 조성된 ‘마리 앙뚜와네트의 초옥’은 바로 이것을 모방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하자마자 영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혁명 정부는 모든 예술품을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송시키고 성을 감옥으로 사용한다. 1799년에 정원은 파괴되고, 큰 성은 테라스 부분까지 완전히 파괴된다.
 

 

 


1815년 나폴레옹 1세의 몰락과 함께 루이-죠셉의 가족은 다시 이곳에 정착하고, 루브르 박물관에 이송된 예술품과 귀중품들의 일부를 되돌려 받는다. 루이-죠셉의 아들인 엉지앵 공작이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나폴레옹 1세의 계략으로 체포돼 ‘뱅센느 성’의 해자에서 무참히 총살을 당한다.

1830년 외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부르봉 공작이 자살하면서, 프랑스 마지막 왕 루이 필립의 5째 아들인 8살짜리 앙리 오를레앙 즉, 오말 공작이 모든

재산을 유산으로 물려받고 샹티이 성에 정착한다.

1848년 제 3차 프랑스 대혁명으로 아버지인 루이 필립 왕조가 무너지자 영국으로 망명을 떠나서, 1871년까지 영국에서 값진 고서, 보석, 예술품과 그림들을 수집한다. 자신처럼 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 고화, 고서, 중세 시대의 필사본 등을 집중적으로 수집하면서 언젠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오말 공작의 큰 아들은 영국 망명 시절인 1866년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다가 21살의 한창 나이에 열병으로 죽고, 부인은 프랑스 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고 1869년 사망했으며, 1870년 나폴레옹 3세의 제정이 무너지자 프랑스로 귀환하지만, 마지막 남은 혈육인 둘째 아들이 18살의 나이로 급사한다.

가족의 불행을 잊고자 샹티이 성을 복원하고 정원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 건축가 오노레 도미에가 이미 존재하던 건물과 조화롭게 절충주의 양식으로 성을 건설하고 프랑스 양식의 정원으로 꾸민다.


 

 

 


■ 교회

교회는 생 루이왕에게 헌정된 것으로 지붕 위쪽에 입상이 보인다. 1882년 오말공작의 요청으로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옛 자리에 오노레 도미에 건축가에 의해 세워진다.

꽁데 가문의 ‘앙리 2세’ 왕자에게 바쳐진 기념물은 제단 뒤쪽에 있다. 그랑 꽁데가 자기의 아버지를 위해 주문제작한 것으로, 프랑스 대혁명 시기인 1791년 파괴될 운명에 처한 것을 프랑스 문화재 박물관 초대관장을 지낸 알렉상드르 르느와르에 의해 파괴를 모면하고 1816년 꽁데 가문에 반환했고, 오말 공작에 의해 1836년 이 곳에 자리를 잡는다.



■ 공원과 정원

17세기에 프랑스 정원 양식을 개발한 앙드레 르 노트르에 의해 완성, 정원을 가로지르는 대운하, 프랑스 양식 화단과 분수가 조화를 이루는 115ha 규모의 정원은 꽁데 왕자를 위해 1774년에 지은 5채의 초옥을 둘러싸고 있다.

1719년부터 1735년까지 쟝 오베흐에 의해 설계된 ‘큰 마구간’과 ‘사랑의 섬’, ‘비너스의 신전’이 정원과 어울린다. 19세기 영국 양식의 정원 한 가운데 위치한 ‘사랑의 섬’은 꽁데 왕자가 여름철 축제때 손님들을 맞이하던 장소이다. ‘사랑의 섬’으로 진입하면서 좌측으로는 ‘보배의 폭포’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비너스의 신전’이 보인다. 섬으로 연결하는 통로는 운하로 둘러 싸여있고, 회양목이 줄지어 서있는 잔디밭은 오말 공작을 위해 19세기에 완공한 것으로, 원형 지붕의 철책 아래에는 사랑의 신인 ‘에로스(큐피터)’가 서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외국으로 망명을 간 루이-죠셉의 명으로 건축가 쟝-프랑스와 르흐와에 의해 1774년에 건설된다. 루이 16세의 부인으로 비운의 왕비로 불리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곳의 초옥을 방문하고, 베르사이유 궁전의 정원에 있는 트리아농 궁전에 이것과 비슷하게 초옥을 만든다.

 

 

 



>>테마여행가 안완기는…

한국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1992년 프랑스로 건너가 유럽의 건축을 공부했으며, 특히 프랑스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에 빠져 들게 됐다.

그는 이 나라의 문화에 대해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아쉬움만 남기고 돌아서는 수 많은 여행객들을 보면서 프랑스를 제대로 느끼고 배우는 정직하고도 건강한 여행문화를 꿈꿨다.

지난 2003년부터 프랑스 여행 정보를 공유하는 홈페이지(www.algogaza.com)를 제작, 운영해 유용한 프랑스 여행관련 정보 및 자료를 꾸준히 올리고 있다.



<약력>

- 1986년 경희대학교 건축공학과

- 1992년 프랑스 유학

- 1995년 Strasbourg 건축학교 수학

- 1998년 Val-de-Marne Paris 건축학교 수학

- 2002년 프랑스 테마여행 전문 가이드

- 2006년 ‘알고가자 프랑스’ 테마여행사 운영

- 2014년 ㈜OECD 대표부 대외협력부 근무

- 2014년 9월~ ‘알고가자’ VIP여행사 창업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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