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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뚝배기 보다 장맛

 

설이 다가오면서 한 해를 그냥 넘기기가 서운했던지 눈이 잦아지고 급기야 강추위가 맹위를 떨친다. 하루에도 먼지같은 눈이 내리다 함박눈이 내리다 잠시 해가 나기도 하고 다시 눈이 쏟아지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내 마음도 눈송이 따라 변한다. 먼지 같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눈이 날리면 눈 많이 온다고 하던 말에 미끄러울 걱정이 앞서고, 함박눈이 내리면 눈 구경 가고 싶어 들썩이고 비늘눈이 오면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고 보니 벌써 속부터 떨린다. 눈 오는 구경을 하다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날이 저물어 저녁 준비할 시간이 돌아온다. 마침내 청국이 잘 떴다며 맛이나 보라고 준 청국으로 찌개를 끓인다. 알맞게 익은 김치를 뚝배기에 앉히고 청국을 넣고 있으니 슬슬 냄새가 퍼진다. 두부 한 모에서 반을 잘라 손바닥에 얹고 끓는 뚝배기로 썰어 넣는다. 세 식구가 모여 앉아 가로등 밑으로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먹는 찌개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만찬이 된다. 저녁을 다 먹고 식탁을 정리하며 아직 따뜻한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뚝배기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있으니 온 몸이 따뜻하게 풀리며 기분 좋은 피로감이 번진다.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는 흔하게 듣고 흘리던 말이 실감나는 행복한 저녁이다. 설거지를 하면서 뚝배기를 제일 먼저 씻어 건져 놓는다. 맛있는 찌개를 먹게 해 주지만 다른 그릇과 부딪치면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밥공기를 닦고 접시와 수저까지 닦아서 제 자리에 정리를 하면서 잠시 스치는 생각이 있다. 지금까지 뚝배기 보다 장맛이라는 말이 평범한 진리라는 생각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말을 하거나 들으며 무심히 지나온 날들 중에 평범한 진리의 이면을 생각해 본적이 있었을까?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생각해 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숨겨진 진리를 흘려보내고 있다. 장을 짓을 때에는 뚝배기가 제격이라 조금 못 생겨도 무방하다는 얘기이지 외적요소는 성의 없이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준비해도 좋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겉치레로 치우치는 세태를 경계하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

어쩌다 틈이 나면 가까운 사람을 만나기도 시간을 갖기도 한다. 대개 영화를 보기도 하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마음 청소를 한다. 식사 자리라고 반드시 먹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있지만 그 집의 조경이나 실내장식을 보기도 하고 그릇이나 집기류에 눈이 가기도 한다. 하나하나 고객을 위한 배려와 주인의 개성을 담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은 제 자리에서 제 쓰임새에 맞게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름답게 장식된 찻잔이나 섬세하게 만들어진 티스푼도 차에 맛과 향을 더하기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분명 자기의 자리와 역할이 있고 맡겨진바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사회는 해를 넘기고도 진정국면으로 접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모두가 보이는 것에 치중하거나 공명정대하게 처리하여야 마땅히 함에도 불구하고 음지에서 드러내 보일 수 없는 일에 골몰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뚝배기는 뚝배기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유리컵은 유리컵의 용도에 맞게 쓰여야 하고 도자기는 도자기로 자리하고 바구니는 바구니로 쓰일 때 비로소 평안한 세상이라고 할 것이다. 나라를 위해 일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많은데 누가 그런 세상을 만들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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