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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세상의 모든 큰언니들에게 감사하다

 

아프리카 가나에 사는 큰언니랑 큰형부가 한국을 방문하여 설명절을 함께 보냈다.

중학교 1학때 대학교 1학년인 큰언니는 그때부터 나의 보호자가 되어 어머니 대신 학교에 와서 진학상담을 하였다. 큰언니가 고등학교때 공부하던 세계사책으로 공부를 하여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때 전교에서 유일하게 100점을 받은 기억부터 큰언니의 모든 행동을 어깨 너머로 배우며 성장을 하였다. 4녀 2남의 장녀로 공부를 잘했던 큰언니는 언제나 공부방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이 법관을 만들고 싶어 했던 바람만큼 집안에서의 위상은 아버지 다음으로 권위가 있었다. 아마도 어린 동생들을 위한 아버지의 배려일 수도 있었다. 큰언니가 공부할 때는 모두들 조용히 하고 같이 공부를 하거나 책을 봐야만 했다. 어린 시절 언제나 공부만 하는 큰언니와는 같이 대화할 시간이 없어 학교 간 큰언니의 방에서 책상 위에 있던 목각인형이랑 놀며 그림을 그렸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런 큰언니는 언제나 당연한 것처럼 집안의 가장이 되어 어린 동생들을 지키고 어머니에게는 남편 역할을 하며 집안을 위해 고군분투 하면서 아버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평생동안 동생들의 삶 깊숙이 관여하며 보살폈다.

미술대학을 다닐 때에도 “그림을 잘 그리니까”라는 큰언니의 말은 4년내내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대학 졸업 후 한학기 정도를 쉬고 있을 때 큰언니는 너의 인생에서 가장 쉴 수 있을 때가 지금이니까 마음 놓고 쉬라고 했다. 큰언니 말대로 그후 31년을 쉬어본 적이 없이 달려왔다. 대학 다닐 때도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10시만 되면 큰언니의 불같은 성화로 집에 돌아와야 했고,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도 동생들과 맛있는 음식을 하고 파티를 하며 집에 있어야만 했다.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지금도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해양대학 출신인 큰형부가 오랜 해외생활을 할 때에도 큰언니는 동생들과 함께 살며 큰아들 노릇을 하다가 외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테마 추장이라고 불리우는 큰형부의 일터인 아프리카 가나로 20년 전에 들어갔다. 가서도 쉬지 않고 가나 국립대인 레곤대학에서 영어 어학과 NGO매니지멘트 과정을 거쳐 한국에 있는 남동생과 더불어 가업인 수출회사를 일구어 내었다. 큰언니 뒤에는 언제나 든든하게 받쳐준 우리에게 아버지같은 큰형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큰언니가 떠나고 나서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평생 지니고 견디어낸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이었다. 큰언니 보호 아래서 자기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깊은 배려에 감사함을 느끼며 큰언니의 빈자리를 메꾸면서 우리 형제들은 드디어 어른이 되었다. 말하지 않아도 큰언니의 행동을 보고 배우고 느끼며 흉내내었던 형제간의 학습들을, 형제간에 자연스럽게 배워지는 우애를, 이제는 부모가 대신 가르치고 말해야 하는 상황을 우리 자식들은 이해할까.

2010년 1월 아프리카 가나로 수원봉사 방문단을 이끌고 처음 도착했을 때 큰언니가 살고 있다는 이유로 아프리카의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고, 그후 삶은 주변을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아프리카 가나 글로벌새마을교육재단을 설립하여 평생 풀어야 하는 숙제를 내어주기도 하였다.

멋진 백발을 날리며 아직도 수산업 일선에서 뛰고 있는 큰형부가 올해 칠순이 되어 모리셔스에 있는 아들 식구들까지 모두 한국에서 모이게 되었다. 언제나 동생들을 지키며 젊고 힘있는 모습으로 우리를 챙겨줄 것 같았던 큰언니도 이제 나이를 먹어 보인다. 이렇게 한 시대가 가고 있구나를 느끼며 우리도 언제가는 저렇게 되겠지 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동안 참 잘 살아왔고 고마웠습니다. 이제 마음 편하게 책임감은 벗어놓고 멋진 노년을 누리시길 빕니다. 자식들 일은 자식들에게 맡기고 이제부터는 행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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