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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지극한 ‘혼밥 사랑’이 주는 교훈

 

‘모난 밥상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두레판이 그립다./ 고향 하늘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달이 뜨면 피어나는 달맞이꽃처럼/ 어머니의 두레판은 어머니가 피우시는 사랑의 꽃밭./ 내 꽃밭에 앉는 사람 누군들 귀하지 않겠느냐,/ 식구들 모이는 날이면 어머니가 펼치시던 두레판.’ 정일근 시 ‘둥근, 어머니의 두레밥상’ 중 일부다.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고비 때마다 어머니의 포근함이 담긴 풍요로운 밥상을 생각나게 한다고 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시다.

구절구절 묻어나는 감상을 거론치 않아도 한국인에게 밥자리는 특별나다. 해질녘 귀가한 아버지의 온기도 함께 묻어나는 저녁 밥상. 도란거리는 식구들 얘기와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부모는 사람 사는 도리를 가르치고 아이들은 세상 이치를 배운다. 착하게 살아라, 밥 얻어먹는 것보다 밥 사주는 사람이 되어라 등등.

지금도 많은 가정 이러하다. 세월이 변해 오르는 반찬과 일방적 훈계(?)는 달라졌어도 밥이 놓인 식탁에 마주앉으면 가족 간에 자연스러운 대화가 오고가는 건 변하지 않았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친척 간 소소한 소식, 육아와 살림살이 애로사항, 가족 미래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물론 ‘그만 밥 묵자’라는 한마디로 밥상머리 대화를 단절시키는 때도 있지만, 그럴 때면 대화 내용은 더 복잡해진다. 그동안 섭섭했던 소원 수리 창구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불만 섞인 약속 불이행 사례도 터져 나온다. 모두가 한 테이블에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처럼 비록 한 끼 식사지만 함께 하면 소통의 창구가 되는 것이 밥상이다.

사회생활에서도 함께 하는 식사는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처럼 전화를 걸어온 친구나 선후배와 “밥 한 번 먹자” “술 한 잔 하자”는 대화는 만나서 속 깊은 얘기라도 나눠보자는 정다운 말이다. 서양 커뮤니케이션 이론도 ‘뭔가를 함께 먹을 때 가장 좋은 소통이 이뤄진다’고 하지만 우리네 정서는 이보다 훨씬 더 두텁다.

나아가 아무리 서먹서먹한 사이라 해도 먹을 것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게 마련이다. 뭘 먹느냐에 따라 회의석상에서 나올 일 없는 이야기도 음식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풀려나온다. 특히 그 사람과의 새로운 기억이 생긴 만큼 ‘밥이라도 한 번 먹은’ 관계는 이전과 다른 친근감과 동질감을 갖게 된다.

이러한 정서가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래서 우리는 예부터 ‘혼밥’을 터부시 했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어색하고 쑥스러워 혼자 밥을 먹느니 차라리 굶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또 최근까지만 해도 혼자 밥 먹는 사람에 대한 주변 시선도 따가웠다. 친구가 없는 외톨이라거나 성격이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요즘은 안 그렇다. 혼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혼밥’ ‘혼술’을 넘어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모든 일정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나홀로 여행하는 ‘혼행’ 또한 인기다. 자신을 돌보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소비계층이 늘어난다. 이들은 남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가생활에서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에 돈을 쓰는 데 적극적이다.

비록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나타나는 사회 현상이지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홀로족’ 가운데는 ‘관태기’에 빠진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관태기’는 ‘관계’와 ‘권태기’의 합성어로 알맹이 없는 인간관계에 염증과 회의를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고 하는데 이럴 경우 좁아지는 인간관계가 고립감과 소외감을 키우고 소통 없는 사회로 변질시킨다고 해서다. 당장 대통령의 ‘지극한 혼밥 사랑’이 국민과의 소통 단절을 가져왔고 결국 탄핵으로 이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대통령이 밥 먹자고 부르면 그야말로 ‘열 일 제쳐 두고’ 달려올 사람도 많았을 텐데 미스터리다.

이런 학습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최근 정치판에선 ‘혼밥’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오히려 늘고 있다. 거기에다 끼리끼리 어울리는 편식, 아예 동질감이 없는 사람은 접근조차 못하게 하는 독식까지 다양한 밥상을 차리는 정치인들도 있다. 특히 대선행보에 나선 유력 주자와 측근들이 더하다. 그러고도 국민들에겐 소통과 화합을 외쳐대고 있다. 같은 당원이더라도 만남이 줄어들면 오해의 벽이 생기고, 소통이 없으면 ‘불통의 리더십’이란 딱지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게 마련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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