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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아름다운 동행

 

전북 익산에 있는 산에서 시산제를 올렸다. 시산제의 어원을 보면 시산제는 해마다 새해가 시작될 무렵 산악인이 산을 지키고 보호하는 신에게 지내는 제사라고 되어있다. 음력 정월이 가기 전 산을 찾는 사람들의 안전을 빌고 먼저 간 산악인에 대한 예를 표하기도 하고 회원의 친목과 결속 그리고 가정의 행복과 기원을 신께 기도하고 축원하는 자리이다.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신에게 올리고 마음을 다해 한 해 동안 무사한 산행이 되도록 마음을 모아 기원한다. 백두대간의 높고 낮은 산맥과 능선들 그리고 나무, 풀, 구름 그리고 지나치는 바람 한 줄기도 이 순간만큼은 위대하고 숭배의 대상이 된다.

자연을 섬기고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키는 것이고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것임을 알기에 경건한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살다보면 사소한 순간순간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거기서 해답을 얻는 것처럼 어떤 의식과 과정을 통해서 위안과 힘을 얻게 된다.

종교가 다르고 의식이 다르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하나가 된다. 산의 기운으로 가정이 평온하길 축원하고 바라던 일이 성사되길 기원하며 무엇보다 1년 동안의 산행에 있어 큰 사고 없이 건강한 산행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시산제를 올리고 나누는 막걸리 한 잔이야말로 목마른 자의 샘물 같다. 지나는 이들과 음식을 나누고 덕담을 주고받는다. 산악인들에게 있어서 시산제는 년 중 가장 큰 행사일수도 있다.

우리 일행은 시산제를 마치고 윷놀이로 그 흥을 이어갔다. 삼삼오오 서로를 응원하고 서로를 견제한다. 모나 윷이 나오면 한바탕 춤사위를 펼치고 상대편 말을 잡으면 포효하며 기뻐하는 모습이 머리 희끗희끗한 아이 같다.

모가 될 듯 도가 되는 윷의 묘미와 세 둥이 업고 거침없이 질주하다 막바지 지점에서 상대방의 한사리로 잡혀 먹혀 역전되는 형국이 영락없는 세상살이 같다. 어쩌면 세상살이도 윷판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먹고 먹히며 달아나기도 하고 가다보면 지름길을 찾아 쉽게 가는 길이 있는가하면 사방을 다 돌아 모든 것을 거치고서야 목적지에 힘겹게 도달하는 길도 있다. 빠른 길만이 정석은 아니겠지만 가끔은 쉽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보너스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패를 가졌어도 말판을 놓는 사람의 지략에 따라 승부가 달라진다. 급한 마음에 앞의 패를 잡으려고 욕심냈지만 둘을 업고 가는 게 빠르다는 훈수 덕분에 승리한 것처럼 세상살이도 윷놀이도 멀리 보는 지혜와 순간의 판단능력이 중요함을 새삼 깨달았다.

이기면 이겨서 막걸리 한 잔 나누고 지면 진대로 즐거워서 한 잔 나누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나이 들어가면서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그 귀한 시간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건강해야만 산을 오를 수도 있고 윷놀이도 할 수 있으며 좋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술잔을 나누며 즐길 수 있다. 산에 오르는 사람의 표정에는 편안함이 있다. 좋은 공기 접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몸이 허락하는 만큼 산을 즐기는 여유가 있다.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새해 벽두 마음에 새긴 각오가 무색하게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어려운 경제 속에서 무기력해지기 쉽지만 마음 지수를 높이자. 두 팔 벌려 산의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고 큰 소리로 희망을 외치자. 돌아오는 메아리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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