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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원치않은 설화(說禍)를 남기고 돌아간 ‘전인범’

 

지난 4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전인범 전 특수전사령관을 자신의 캠프에 깜짝 영입한 사실을 발표했다. 대선 주자 중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고, 그의 안보관이 의심스럽다는 눈총을 받고 있는 때에 전인범 전 중장의 합류는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전인범은 현역 시절 튀는 행동과 언어 그리고 소신있는 장군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다 부하들로부터도 ‘참군인’이라 인정받은 터라 더욱 그러했다. 그는 1983년 10월 9일 미얀마(당시 버마) 아웅산 묘소 폭발테러사건 현장에서 당시 이기백 합참의장을 들쳐업고 뛰어나온 일화로 유명하다. 부관으로서, 육군 중위로서 우리나라 국군 총사령관을 구하러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그의 용기있는 행동은 두고두고 회자(膾炙)되어 왔다. 당시 장·차관 등 18명에 이르는 정부 고위 관료들이 모두 숨지고 이기백 합참의장만이 유일하게 목숨을 건져 25세의 나이 어린 전 중위의 행동은 더 빛났는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숱한 일화가 따라다닌다. 전역하는 사병들에게는 “그동안 고생했는데 줄 건 없고 소장 경례나 받고 가쇼”하면서 먼저 거수경례를 해줬다. 사단 체육대회 훈시에서는 “재미있게 잘 놀아라”며 짧게 끝낸다. 국회의원들이 부대를 방문한다고 하면 전 장군은 “오거나 말거나 평소대로 하라”고 지시했다. 장병 위문공연에서 용기있게 무대로 나가 잘 뛰어노는 병사들에게는 대대장에게 지시해 “이 새끼들 휴가보내!”라며 9박10일짜리 포상휴가증을 끊어주도록 했다. 이같은 전 장군의 포스(force)를 보고 매력을 느끼지 못 하는 병사가 있을까? 몇 년 전 대학 후배가 특전여단장으로 취임하는 자리에서 전 장군을 직접 봤다. 전인범 특전사령관의 훈시는 아주 짤막하고 간단 명료했다. “전임 0장군 그동안 고생했네. 부임하는 0장군도 전임 장군 못지않게 수고해주게!” 나 역시 평소 듣던 바대로 군인 그대로의 모습과 그의 품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그가 문재인 캠프에 깜짝 영입됐으니 주마가편(走馬加鞭) 격이었다.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어 표정관리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것도 문 전 대표는 특전사 출신이다. 치명타를 맞은 듯한 보수 쪽에서조차 놀랐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악재가 터지고 말았다. 전 장군이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며칠 뒤 부인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비리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것이다. 캠프 합류와는 무관한 일이지만 전 장군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부인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우리 집사람이 비리가 있었다면 제가 어떻게 했을 거라 생각하십니까”라고 자문한 뒤 “권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라고 해 일부 누리꾼들에게 비판을 받은 것이다. 군인다운 답이었지만 소름이 끼친다. 아직 2심이 남아있다지만 그래도 부인을 향한 답변치고는 여성단체들조차 비난할 정도의 부적절한 답변이었다는 평이다.

5.18에 관한 답변도 문제가 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발포를) 지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휘 체계가 문란했던 점이 잘못”이라고 언급,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발언은 전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사뭇 군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내용이어서 반발을 산데다 자칫 호남민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육사 4학년 생도 시절 발생했던 일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얘기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인을 쏴죽였을 것이라는 발언과 함께 설화(說禍)로 돌아온 셈이다. 어찌보면 그는 군복을 입고 있을 때와 민간인일 때의 발언은 상황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간과했는지도 모른다.

전 장군은 결국 각종 구설과 논란에 대해 “수십 년 군인으로 살아온 저 자신이 아직도 많이 모자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백번 천 번 송구하고 부끄러운 마음 면할 길이 없다”고 거듭 사과하면서 연수를 받던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정치는 안 하겠다는 말처럼 그는 앞으로도 영원한 참군인으로 남아 있으면 된다. 설화(說禍)를 애써 해명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며 기를 쓰는 정치인보다는 훌훌 털고 가는 그의 모습이 역시 참군인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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