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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졸업식과 짜장면

 

“다 울었는데 쟤만 안 울었어요.”

“남자는 무슨, 자기는 남자라서 안 운대요.”

볼 빨간 지영이가 뛰어 들어오면서 재재거렸다. 뒤이어 우르르 들어서는 오늘 초등학교를 졸업한 똘망똘망한 아이들. 제각각 졸업식 이야기로 까르르 까르르 무너지기도 하고 오늘 졸업식 끝나고 먹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 등등, 수다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헤어날 줄 몰랐다. 함께 섞여 깔깔대던 나는 아이들이 졸업식 끝나고 가족과 함께 먹은 음식이 의외로 짜장면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직도 짜장면의 위력이 이렇듯 남아있다니 새삼 반갑기도 하고 오래된 그리움인 듯 일순간 짠한 추억들이 포르르 일었다.

‘오라이, 오라이’ 목이 쉬도록 외쳐대는 차장아가씨의 신호음. 먼지 뽀얗게 뿜어대는 비포장도로의 덜컹거리는 통학버스. 비오는 날 비둘기호 기차 안에서 훅, 덤벼드는 비릿한 내음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짜장면 한 그릇의 외식이 얼마나 귀한 파티였는지를 알 것이다. 시골 중학교 졸업식 날 종이 꽃다발 한 아름 안고 찾은 중국집 식당. 모처럼 양복차림의 아버지와 어머니 함께 식당 온돌방에 펼쳐진 테이블에 마주 앉아 들여다 본 완두콩 몇 알, 오이채 오소소 뿌려진 먹물처럼 까맣게 웃고 있던 짜장면 한 그릇. 그날 이후 나는 이사하는 날이나 아이들의 졸업식에는 으레 짜장면을 찾았었다. 하지만 국민 외식 메뉴였던 짜장면은 산업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서서히 특별함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너무나 가까워진 외식문화.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앞다투어 불러대는 식당 간판들. 특별함을 내세운 음식 광고메시지는 과히 폭발적이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음식점, 음식점들. 시간을 다투며 신 메뉴를 개발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앞 다투어 방영되는 먹방. 홈쇼핑에서는 포장요리를 주방까지 배달하겠다고 한다. 맞벌이 또는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추어 함께 성장하고 변해가는 음식문화. 그야말로 요즘의 우리나라는 외식의 천국인 듯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 화려한 외식 메뉴 가운데 그 자리 묵묵히 지키며 졸업식이나 운동회 날, 갖가지 추억 떠올릴 수 있게 골목마다 드문드문 붉은 간판 내 걸고 배달음식에 합류하며 짜장면이 아직도 그 명맥 유지하는 이유. 그건 분명 결코 놓아버릴 수 없는 끈적끈적한 함께 먹은 이들에 대한 추억, 그들과 나눈 그 사랑 때문일지도 모른다.

뷔페식당 별별 음식을 다 먹다가도 문득 어머니 된장찌개가 간절히 그리운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때를 함께 이겨냈던 각별한 음식인 그 짜장면 한 그릇의 추억이 간절히 그리울 때가 있다. 아마 오늘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 아이들의 부모들도 그런 애틋한 추억 하나씩 안고 있기에 사랑하는 아이들에게도 그 추억 물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언젠가 포항 송도 중국음식점에서 먹어 본, 특히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그 짜장면 한 그릇 어머니께 꼭 대접하고 싶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부드럽고 진득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달달한 한국음식 짜장면. 한 입 가득 베어 문 거무죽죽한 짜장면에 단무지 한 조각 춘장에 쿡 찍어 먹는 그 맛, 그 옛날 추억 한 자락씩 거침없이 버무려가며 오래오래 음미하고 싶다. 그렇게 뜨끈뜨끈한 마음 속 풍속화 또 한 장 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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