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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빙하, 바다와 포옹 ‘한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뉴질랜드 민속마을 ‘샨티타운’으로 이동
서해지역 잦은 우기탓에 하늘도 흐려
구름과 어우러진 풍경도 또한 아름다워

빅토리아 풍 극장서 과장된 활극 관람
기적소리 울리는 증기기관차도 탑승

개천에선 쟁반으로 사금 채취 체험 가능
하루종일 금 채취하면 사과 한개 값 얻어


하루종일 하늘은 맑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민속마을 ‘샨티’(Shanty Town)를 향해 온 길을 되돌아 달렸다. 바다는 오전보다 더 중저음으로 가라앉았다. 6번 도로를 달리다 호키티카 방면으로 접어들었다. 이 길로 곧장 가면 프란츠 요셉 빙하가 나온다. 운전대를 아들이 잡았다. 아버지는 옆에서 떠나지 못하고 걱정스레 아들을 보고 있다. 그런 아버지의 눈길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은 캠퍼밴 최고 속도인 80km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어제보다 눈에 띄게 안정감을 찾았다.



 

 

 

우리가 지나는 이곳 웨스트코스트 지역은 일년 내내 비가 온다. 연 강수량이 5천에서 1만 2천에 달한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납다. 그런데 그 강한 바람이 이곳 자연의 거친 매력을 완성하는 예술가다. 날씨가 나쁘다고 투덜거릴 필요가 없다. 맑은 날의 자연은 아름답다. 그러나 궂은 날의 자연 역시 아름답다. 무엇이든 자기 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기쁨은 있는 그대로를 즐길 때 온다. 웨스트코스는 메마르고 바위투성이다. 길게 흘러내린 빙하가 일년 내내 찬 기운을 바다로 쏟아낸다. 이런 거친 자연이 품었다가 이 지역에 선물한 것이 있다. 바로 금이다.

뉴질랜드 남섬은 한 때 미국 서부를 방불케하는 노다지 세계로 알려졌다. 열악한 시절에 많은 사람들이 금을 캐기 위해 목숨을 이곳에 몰려들었다. 아직도 사금채취를 해보면 웬만한 강하구에서 금이 나온다. 역사 이래 돈(금)이 모이는 곳에는 도박, 매춘, 범죄가 성행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마음 속에는 이미 패망이 깃들어 있다. 노력없는 성공이 인생에 가져다 주는 것은 한 가지, 불행 뿐이다.

고속도로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네비가 샨티마을을 잘 찾아주지 못해 좀 헤맸다. 다행히 곧 샨티마을 간판을 찾았다. 금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 때문에 형성된 마을을 옛날 모습 그대로 보존한 것이 샨티마을이다. 이곳 거리의 상점들은 실제로 물건을 팔고 있다. 간발의 차이로 예정한 1시 15분 증기기관차를 놓쳤다. 다음 기차가 출발할 때까지 한 시간이 생겼다. 거리의 모든 상점을 차례로 둘러봤다. 이발소, 정육점, 빵집, 옷가게, 신발집, 식품점, 그리고 빅토리아풍의 극장까지. 암막이 쳐진 극장에 들어가 영사기로 돌리는 과장된 표현의 활극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위가 오픈된 문에 팬티내린 그림이 그려진 화장실 변기에 앉아 사진도 찍고,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고 적힌 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매 맞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도 지켜보았다. 소방관, 도서관, 학교, 꽤나 진보된 시설의 병원 수술실도 둘러봤다. 마당에는 매화처럼 생긴 나무에 빨간 꽃이 만개해있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2시 15분에 증기기관차를 탔다. 증기기관차 역시 모형이 아니라 당시 방식대로 석탄을 때서 움직이는 기관차였다. 고전영화에서 보듯이 기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나’란 표현이 생각났다. 숲 속에 난 철길을 달리다보니 목재소가 나타났다. 거대한 나무 둥치를 운반하는 자료관의 사진들을 보았다. 이 울창한 숲이 얼마나 좋은 목재를 제공했는지, 사람들은 그것을 운반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알 수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 둥그렇게 돌아나오니 그곳 개천에 사금 채취장이 있다. 조수가 사금을 직접 채취해보게 도와주는 곳이다. 흥미로워 보이지 않아 티켓은 사지 않았다. 대신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사금을 채취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조수는 아이의 입 너른 쟁반에 흙을 한 삽씩 퍼서 올려줬다. 대단한 기술이나 장비는 필요없다. 원리는 간단하다. 흙이 담긴 쟁반을 물속에 넣고 흔들면서 사금이 남게 하면 된다. 사금은 비중이 가장 큰 금속으로 19.3g/ml이다. 1리터 우유팩 하나에 금을 채우면 19.3kg이라고 한다. 금은 물에 비해 무겁기 때문에 물에 넣고 계속 흔들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가라앉은 금을 제외하고 남은 것들을 계속해서 버리면 금만 남게 된다. 쌀에서 돌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네 가족은 열심히 쟁반을 흔들었다. 쟁반 속의 흙은 점점 줄어들고 금가루가 나타났다. 감질맛나게 오래 흔들어 얻은 금은 아주 미량이었다. 금을 얻기 보다는 이런 것도 해봤다는 만족감을 위해 하는 놀이였다. 도와주는 분에게 물었다.

“이렇게 하루종일 일하면 얼마어치의 금을 채취할 수 있습니까?”

“사과 한 개는 살 수 있을 겁니다.”

“푸하핫~”

어른들 말이 틀리지 않았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



샨티 주차장에 설치된 피크닉 테이블에서 라면을 끓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종갓집 김치가 제 맛을 냈다. 오늘의 종착지는 프란츠 요셉 빙하 마을의 탑10 홀리데이파크다.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에 그곳에 도착했다. 캠퍼밴 스팟을 정한 후에는 모두 샤워장으로 달려가 시원하게 떨어지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재빨리 챙겨나온 저녁거리들,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하는지 이제는 다들 잘 알고 있다. 고기를 굽고, 그 숯에 고구마도 호일에 싸서 굽는다. 심심한 북어 계란국도 끓이고 야채 샐러드도 만든다. 모두 바쁜 손을 움직여 푸짐한 저녁 식탁을 차리는 동안 나는 파크 사무실로 달려갔다.
 

 

 


다행히 아직 사무실이 문을 열고 있다. 엘리사란 친구가 반갑게 무얼 도와주냐고 물어왔다. 내일 오전에 할 헬기투어 예약을 도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빙하 헬기투어는 언제나 인기여서 완전 비수기가 아닌 이상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는 사실을 나는 간과했다. 성수기가 아닌데다 프란츠요셉이나 폭스 빙하마을에 여러 헬기투어 회사들이 있는데 ‘우리 여덟 사람쯤이야’라고 했던 것이다.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를 받으며 하루종일 아이폰으로 예약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빙하 워킹 투어마저 예약하지 못했다.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이제와서 두 개 투어를 모두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빙하투어는 여기까지 온 유일한 이유인데, 사람들에게 프로답지 못하게 보이는 건 싫었다. 고맙게도 엘리사는 자신의 일인냥 헬기투어 회사들을 일일히 컨택해서 가능성을 타진해줬다. 정말 다행히도 한 회사(Air Safari)가 가능하다는 회신을 줬다. 그 덕분에 맘편히 저녁을 먹을 수 있게 됐다.<계속>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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