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태극기와 촛불
[정준성칼럼]태극기와 촛불
  • 경기신문
  • 승인 2017.02.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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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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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主筆)

엊그제 한 통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어느덧 입춘도 지나 봄의 길목에 있는 지금…”으로 시작되는 문구의 마지막은 토요일인 25일 수원 모처에서 개최될 태극기 집회에 꼭 참석해 진정한 보수의 힘을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발신처가 모르는 번호여서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았나 물으려 전화를 했으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라는 반복음이 계속된다. 짜증이 났다. 그리고 얼마 전 읽었던 “태극기 집회가 보수의 대반격 기회로 삼으며 과격조짐을 보인다”는 신문기사가 떠올라 심사마저 뒤틀렸다.

필자도 나이로 보면 보수로 분류된다. 나이가 많다고 다 보수는 아니지만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치부한다. 부모로부터 들은 유교적 가르침과 편향된 교육을 받은 시대적 배경 덕분(?)이다. 그런데도 심사가 편치 않았던 것은 왜일까. 아마 두 달 넘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을 앞두고 광화문과 시청에서 벌어지는 군중 대결의 피로도가 ‘샤이 보수’로 변화시킨 것은 아닌가 싶다.

요즘 부쩍 부모 세대들이 시국이 어수선하고 데모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이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해방직후 우리 국민이 편을 갈라 극단의 ‘찬탁·반탁’ 투쟁을 하던 시절, 반탁에 몸담았던 무용담과 함께 “어떻게 지킨 나란데…저 X들 모두 빨갱이”라고 혀를 차던 내용이다. 그러면서 직접 체험하진 못했지만 1945년 해방된 나라의 정치 체제를 어떻게 가져갈까 하는 문제를 놓고 찬탁(신탁통치 찬성)과 반탁 세력이 대립했던 상황도 빛바랜 사진처럼 떠오른다.

편을 갈라 극단의 ‘찬탁·반탁’ 투쟁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1945년 12월 28일 발표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다. 초기만 해도 좌우를 망라한 각 정당과 사회단체 등이 참석한 가운데 순조롭게 회의가 열렸다. 또 좌우익 가릴 것 없이 신탁통치 반대를 외치며 감정이 울분으로 북받쳐 있었다.

그러나 곧 좌익과 우익, 즉 남북이 반탁과 찬탁으로 갈려 군중동원의 심리전을 피 비린내 나게 전개한다. 이듬해까지 이어진 세 대결은 해방된 뒤 두 번째 맞는 3·1절 기념식에 분수령을 맞는다. 두 파로 나뉘어 각각 치러진 기념식 장소는 좌파 남산공원, 우파 서울운동장이었다. 기념식을 마치고 시위행진을 벌이던 두 세력은 남대문 근처에서 충돌,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양쪽이 격렬한 투석전을 벌였고 정체불명의 총기 발포로 2명이 사망,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다. 좌우갈등을 심화시키면서 상호 타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남북분단을 고착시켰다.

탄핵 찬반을 둘러싼 국론 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70여 년 전 해방 공간에서 신탁통치를 두고 좌우가 맞붙었던 ‘찬탁’ ‘반탁’ 대결과 흡사하다. 지난해 탄핵소추안 의결 때만 해도 미미했던 태극기 집회 규모가 최근 크게 불어나면서 촛불 집회와의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태극기 집회는 그동안 견지해온 평화적 시위 형태를 바꾸어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을 택하겠다고 천명, 촛불 집회 참가자들과의 전운마저 감돌게 하고 있다.

물론 태극기 집회가 점차 커지면서 시위 방법을 바꾸는 데는 보수세력을 불안케 하는 요인들도 작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촛불집회에서 ‘이석기 석방’ ‘사드 배치 반대’같이 안보에 영향을 미칠 미묘한 사항을 주장하거나, 내놓고 민중혁명과 폭동을 은근히 유도하는 세력들의 주장 등이 그것이다. 거기에다 촛불 주도 단체의 반미(反美) 성향, 또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대선후보들이 외치는 새로운 국가 건설 등도 그동안 기득권에 안주해 있던 보수층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태극기 집회가 점차 커지고 과격해지려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이런 불안이 보수 세력 전반으로 확산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태극기 집회 주장에 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탄핵 반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나 불복으로 이어지는 그 어떠한 행동도 있어서는 안 된다. 또 점점 과격성을 띠는 태극기 집회를 통해 무엇인가 이익을 얻으려는 집단이 있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다. 여야, 나아가 정치적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70여 년 전같이 심각한데, 그 와중에서 ‘정권을 잡으려’, ‘기득권을 지키려’ 국민들을 볼모로 삼는다면 나라의 혼란은 더 가중될 것이 뻔해서다. 촛불이 태극기 바람에 꺼지고, 태극기가 촛불에 타버려 갈라진 남북 중 그 한쪽이 지금보다 더 갈가리 찢어진다면 우리 자식들에게도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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