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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성경에 보면 몹쓸 병에 걸린 병자가 예수의 옷깃을 만지고 병이 나았다는 내용이 있다. 예수는 옷깃만 만져도 병이 완치될 것이라는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병자에게 말한다. 최순실의 위력은 가히 예수에 버금갔다. 그의 실세를 아는 이들은 그녀의 옷깃만이라도 만져보려고 발버둥 쳤다. 그녀는 전지전능했다.

누군가 신이 아무리 전지전능해도 단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자살이라는 것이다. 신은 아니지만 부소부재의 권력과 재물을 지녔던 대통령은 부끄러움을 생명으로 마감했다. 자살은 결코 옳은 길은 아니었음에도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고귀하게 여겼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심판과 재판이 끝나지 않았지만 청문회와 특검의 조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사건에 앞서서 미안함과 부끄러움은커녕 이들의 뻔뻔함 때문인 듯 했다. 대통령의 옷에 대한 최순실과 고영태의 이해관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유명 백화점에 가서 수입명품 옷을 보게 되었는데 한 벌에 수 백 만원, 천만원대를 호가하는 것을 보고 소문으로만 듣다가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이미지가 있으니 개인 기호를 떠나서 여러모로 좋은 옷을 입는 것이 적절하다. 좋은 옷이란 수입명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 고영태라는 사람이 대통령의 옷을 수백 벌 제작하였다고 하니 그 많은 옷들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지 궁금하다. 훗날 대통령이 한 번이라도 입었던 옷이라는 명분으로 고가로 경매에 붙이기 위해 누군가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대통령은 왜 그렇게 많은 옷들이 필요했는지도 궁금하다. 하기야 많은 행사, 외빈접대가 많으니 기회마다 적절한 옷으로 치장하면 모임과 행사에 더 좋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더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다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벌이라는 옷은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가 소유했다는 수 천 켤레의 구두를 떠올리게 한다. 이 수많은 옷마다 염력이 있었는지 아니면 특정한 옷에만 우주의 기운이 모아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떤 정치인들은 그의 옷깃에 손을 대고 싶어 하면서 여전히 대통령은 잘못이 없다고 외치며 죄 없는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고영태는 그 많은 옷을 만들었고 최순실로부터 옷값을 받았다고 한다. 또 최순실은 대통령으로부터 옷값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옷을 구입하는데 급여의 대부분을 사용한 셈이다. 국민은 가난해도 대통령은 분명히 부자인 듯 하다.

국민들의 대부분은 고급차를 타고 고급 음식을 먹으며 고급 옷을 입고 싶어 한다. 라면은 역시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끓여 먹어야 제 맛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고급 장소에서 고급접시에 담아 먹으면 먹는 사람이 고급스럽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같은 옷이라도 시장에서 구입해서 입는 것과 고급 백화점에서 시장보다 더 고가로 구입하여 입으면 그 옷을 입는 사람의 태도와 옷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진다. 대통령은 그 수많은 옷을 어디서 제작해서 얼마에 구입했는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궁금하지도 않지만 혹이라도 그 많은 옷들이 한 번 입고 버릴 옷 같으면 대통령의 옷에 대한 자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이 때문에 대통령의 사람에 대한 태도도 의심받게 되는 것이다.

‘一行有失, 百行俱傾(일행유실, 백행구경): 한 가지 행실에 과실이 있으면, 백 가지 행실 모두 한 쪽으로 쏠리게 된다’는 말이 있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유념해야 할 말이다. 백 번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회복하기 어렵고 회복하기 어려우니 더욱 변명하게 된다. 이렇게 쌓이는 변명들은 더 회복하기 어렵게 만든다. 가장 정직한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감추어진 것은 모두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말이 있다. 촛불과 태극기로 양극화 되어 있는 듯 보이지만 탄핵심판이 끝나면 모든 국민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가 회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도 그동안 국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쌓아온 저력과 성숙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제 봄이다. 봄날의 옷깃이 온 국민의 상처를 치유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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