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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매듭짓기

 

그날은 이른 아침부터 먼지 같은 눈이 날렸다. 오후부터 눈이나 비가 오리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시작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눈이라고는 했지만 걸음을 멈추고 서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어슴푸레 하게 흐린 날이었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날리는 눈을 보면서 자연스레 정년을 맞아 퇴임식을 하는 친구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겻불도 쬐다 물러나면 서운하다는데 그 심정이 홀가분하기만 할까, 허전한 마음도 못지않으리라. 삼 십여 년을 하루 같이 한 직장에서 청춘을 보낸 친구를 위해 퇴임식이 마련되어 있어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기로 되어있었다. 안정된 직장에 아직 고운 얼굴을 간직한 아내와 예쁜 딸도 둘이 있었다. 결혼한 큰 딸이 작년 가을 첫 손녀까지 안겨준 그래도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순탄하고 운 좋게 사는 친구 중 하나였다.

눈송이는 점점 커지고 간간이 부는 바람에 섞여 나부끼는 잠시 푸근한 날씨에 바로 녹기를 계속하다 빗방울이 되기도 하고 다시 눈이 내리기도 하며 겨울과 봄을 오락가락하며 어두워졌다. 식장에는 벌써 많은 축하객들이 모였다. 함께 일하던 후배 직원들과 전 현직 임원들 그리고 주인공이 활동하는 지역 사회단체의 회원들과 친구들이 모였다. 오늘이 주인공인 친구가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입장하면서 축하식이 시작되어 진행되는 동안 분위기는 다른 퇴임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직장의 대표가 직접 축시를 지어 선물하고 후배 직원은 송사를 시작하면서 목이 메여 몇 차례나 중단하면서 이어가는 모습은 요즘 같은 각박한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정겨운 모습이었다. 그 친구의 평소의 삶을 대변해주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어 나 또한 흐뭇해졌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 없는 이별을 되풀이 하면서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헤어지는 안타까운 이별도 있겠지만 한 번의 이별을 치루면서 성장하고 도약하는 것이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헤어지는 졸업을 통해 상급학교로 진학하고 사회로 진출하게 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자들에게는 친정 부모형제와 헤어지는 슬픔을 통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아 양육하며 어느덧 부모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제 사회로부터 물러나야 하는 시간이 우리 앞에 있다.

먼 길을 걸어야 할 때 대개 편안한 운동화를 신는다. 우선 발끝을 넣고 발꿈치를 밀어 넣으면 곧바로 운동화 끈을 다시 조여 맨 다음 길을 나선다. 아름답게 치장한 여인도 옷차림의 마지막 마무리는 고름을 잘 매는 일이며, 양복차림도 넥타이를 잘 매는 것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매듭은 모든 행위의 결말인 동시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정년퇴직은 그냥 사회로부터 물러남이 아니라 인생 삼모작을 향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옳다.

대나무도 비록 속은 비었어도 단단한 매듭이 있어 어떠한 난관에도 휘어지지 않고 하늘에 닿을 듯 꼿꼿하게 사는 것이리라. 친구여! 우리 대숲으로 다시 우거지면 꽤나 근사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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