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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지금도 라디오 시대

 

지금도,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음악을 들으면 맘이 설렌다. 그러면서 남성적 저음에다 “오늘은 왠지”라는 사탕을 문 듯한 DJ 이종환의 특이한 발성이 지금이라도 곧 바로 울려 나올 듯한 착각에 빠진다. 40년도 더 지난 그 시절을 회상하는 사람은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온 70·80세대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절, 젊은이들의 마음 속 깊이 스며들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 별이 빛나는 밤에 시그널 음악, 청아하면서도 몽환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멜로디가 감성을 사로잡으며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던 그 음악이 1966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오스트리아 가수 우도 율겐스(Udo Jurgens)가 불러 그랑프리를 차지한 칸초네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다. 아울러 제목이 메르시 체리(Merci Cherie)라는 것도 그 후에 알았다. 당시엔 마냥 좋아 무작정 사랑했던 것조차 우리의 뇌리 속에 깊숙이 자리 잡게 한 힘, 라디오는 이처럼 신비로운 힘을 늘 우리들에게 선사했다.

텔레비전은 물론 스테레오 전축도 귀하던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지지직거리는 트랜지스터라디오가 보물 1호였다. 공부할 때도 라디오를 끼고 살았다. 덕분에 학업은 뒷전이어서 요즘으로 말하면 부모에게 불량학생 취급도 받았지만 대학시절을 보내는 동안도 라디오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지금도 이 같은 감정은 별반 변한 것이 없다. 라디오를 통해 음악을 듣는 순간 맘이 설레고 젊은 날에 많은 옛 추억들이 실타래 풀리듯 한없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별밤’ 이외에 모리아의 ‘이사도라’로 시작되는 ‘밤의 플랫폼’ 그리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 ‘0시의 다이얼’ 주옥같은 추억의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어디 나뿐만이겠는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상상의 나래가 무한대로 펼쳐지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힘은 비슷한 또래의 전국 수많은 청소년들의 ‘귀’를 한곳으로 붙잡아 매는 효과도 가져 왔다.

듣고 싶은 노래를 우편엽서에 적어 신청하는 일은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통과의례였다. 방송국마다 청취자들이 보내온 예쁜 그림과 빼곡히 사연을 적은 엽서가 수천 통씩 쇄도 하며 청바지, 통기타와 더불어 청춘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예쁜 엽서 전시회를 열었을 정도다. 라디오는 이처럼 1970년대 초반 젊은이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그들만의 대화가 있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우리 윗세대가 경험한 라디오 힘에 비하면 이 또한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변변한 미디어가 없던 시절 유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성우들의 목소리에 울고 웃으며 힘든 인생의 시름을 잊어서다. 감정이 우선인 음악 프로그램과는 또 다른 의미라 아니 할 수 없다.

‘동심초’ ‘이 생명 다하도록’ ‘아낌없이 주련다’ ‘떠날 때는 말없이’ ‘총각선생님’ 등등 과거 라디오에서 인기를 누렸던 연속극 제목이며 유행가 제목이기도 하지만 당시 라디오는 성우들의 목소리와 효과음만으로 희로애락을 연기하며 청취자들을 울리고 웃겼다. 그 이외에 ‘전설 따라 삼천리’ ‘오발탄’ ‘김삿갓 북한방랑기’ ‘정계야화’는 지금의 시사 프로그램 역할도 해 많은 사람을 라디오 앞에 모이게 했다. 최근 들어 라디오가 제2의 부흥기를 구가하면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장수 프로그램 ‘싱글벙글쇼’를 비롯해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이 원조 격인 셈이다.

물론 국민들과 애환을 같이한 라디오도 한때 암흑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1주일 지난 12월 13일, 라디오 방송국마다 ‘비상’ 사태가 발생,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심야 음악 프로에서 팝송이 일제히 퇴출된 게 그것이다. 그 후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대규모 DJ의 교체도 있었다. 연예인과 깔깔 웃으며 신변잡기를 늘어놓던 토크 코너도 없어지고 대학교수 대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마치 지금의 연예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는 듯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 일이다.

1인 방송국도 늘고, 전통시장 DJ도 등장하는 등 방송에 관한한 다양성이 넘치는 세상이다. 그런 가운데 요즘 라디오가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 거기에 동요치 않고 아날로그적 취향을 잃지 않는 사람들 덕분이라고 한다. 라디오를 친구로 여기는 많은 사람들, 그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오늘은 왠지” 더욱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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