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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죽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24시간뿐이다. 막상 하루밖에 삶이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할 일이 없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많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먹먹할 뿐이다. 가장 크게 걱정되는 것은 딸아이를 출가시키지 못한 것이다. 아들이야 가정을 이뤘으니 서로 의지해서 살 테고 남편이야 아직 능력 있으니 알아서 살겠지 하면서도 혼자 남겨질 남편과 아이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나는 살 수 있는 하루 동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을 초대해서 식사대접을 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고 푸짐하게 온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 계획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야 하는데 초대장을 어떻게 써야할지가 문제였다. 최후의 만찬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초대장을 쓰느라 끙끙대다 잠에서 깼다.

눈을 번쩍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잠자는 남편을 한참을 쳐다보고 딸아이 방문을 열어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왜 죽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또렷이 기억나는 건 주어진 시간이 24시간이고 그 안에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다는데 나는 최후의 만찬을 하면서 생을 마감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니 웃음이 난다. 꿈이 아닌 현실에서 내게 시한부의 생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남은 밤을 꼬박 샜다.

할 일은 많은 것 같은데 막상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에서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막연했다. 도맡아 하던 은행업무며 매월 챙겨야 할 공과금 등 금전적인 것을 정리해서 남편이 살림을 맡았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레시피를 간단하게 정리해놓아야 한다. 양말도 제대로 못 찾아 신으니 양말이며 속옷도 넉넉히 준비해야 하고 옷장 속의 옷도 꺼내서 눈에 잘 띄도록 행거에 걸어둬야 한다. 자질구레한 살림도 버릴 건 버리고 말끔히 청소를 하고 가급적 나의 흔적들은 없애기로 한다.

그래야 남은 인생을 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테니까. 딸아이가 맘에 가장 걸리기는 하지만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잘 하니 크게 당부할 일은 없다. 그리고 꼭 해야 할 것은 미뤄두었던 시집과 수필집을 발간하는 일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정말 죽음이 가까이 와있는 것 같은 착각에 눈물이 났다.

게을러진 내게 회초리를 치는 누군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벌써 3월이고 계절이 바꿨는데 나는 아직 한겨울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아니 지천명의 나이에 들면서 계획했던 일들을 실천하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에 안주해 사는 내게 보내는 경고장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젊은이들도 죽음체험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유언장을 작성하고 수의를 입고 관에 들어가는 체험을 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족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자아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임종 체험을 통해서 삶에 대한 욕구와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알고 자신의 삶에 좀 더 적극적이고 희망을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나는 이런 프로그램보다 더 실감나는 체험을 한 셈이다. 비록 꿈이었지만 살면서 느끼지 못했던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꼈다.

봄빛이 완연하다. 나무도 환해졌고 물빛도 달라졌다. 움츠렸던 마음을 활짝 열고 봄맞이를 해야겠다. 오늘 하루가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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