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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햇반이면 어떠리?’… 절경이 눈앞에 있는데

이한숙 작가의 감성여행기-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궂은 날씨로 헬기투어 결국 취소
프란츠 요셉 빙하서 퀸즈타운으로
각종 아웃도어 스포츠 명소로 각광

이동 중 모에라키 강가서 점심 식사
하스트 패스 따라 펼쳐진 비경에 탄성
계곡에 내려가 물수제비 뜨기 등 즐겨


헬기 투어 예약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싶더니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기다린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날이 갤 것이라는 희망은 깨졌다. 문여는 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갔다.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기 전에 오늘 일정을 결정해서 말해줘야 한다. 엘리사는 없고 다른 직원이 나와 있다가 에어사파리 회사로 전화를 걸어줬다. 직원은 “한 시간 후에 날이 개는지 보고 비행을 결정하겠다, 100% 장담은 못하지만 비행 가능성이 없진 않다”고 전했다. 다 준비해서 투어 회사로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식사 후 우리는 헬기투어에 적합한 복장을 하고 파크를 나섰다.마을 중심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투어 회사로 갔다.



 

 

 

한 시간 기다리면 어떻게할지 답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근처 카페로 갔다. 몇개의 머핀과 플랫화이트 커피를 시켜놓고 아침 수다를 떨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카페 라떼 대신 플랫 화이트를 마신다. 라떼보다 우유가 더 많이 든 커피다. 기회가 될 때마다 우리는 언제나 분위기 좋은 카페로 달려가 느긋하게 커피 한 잔 하는 여유를 놓치지 않았다. 어디서든 그랬다. 그때 늘 함께 한 것이 플랫 화이트였다.

상대적으로 제법 쌀쌀한 곳에서는 더 플랫 화이트가 당겼다. 지금 돌이켜보니 지역 분위기 물씬 나는 커피집에서 그렇게 소소하게 보낸 시간들이 좋은 여행의 일부였다는 것이 새삼 소중해진다.

그렇게 카페에서 오랜시간 기다렸지만 야속하게도 하늘은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기다린 보람도 없이 프란츠요셉을 떠나야했다. 빙하 입구까지 걷는 산책길 코스도 있었지만 아무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모두 빨리 액티비티의 천국, 쇼핑이 가능한 아름다운 도시 퀸즈타운으로 가기를 원했다. 나미비아 사막 여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액티비티의 천국 스와코프문트로 빨리 가기를 고대한 것처럼.
 

 

 


각종 아웃도어 스포츠의 천국인 퀸즈타운은 우리 팀의 두 젊은이가 특히나 선망해온 곳이다. 자연 풍경만을 보며 달리는 이 여행이 그들에게 재미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퀸즈타운은 그런 그들이 고대해온 몇 안되는 관광지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이미 스키와 번지점프 할 생각에 들떠있었다.

프란츠 요셉 빙하에서 퀸즈타운까지는 긴 여정이었다. 하루 종일 이동으로 시간을 보내야했다. 날씨가 흐려서 사물들이 선명하지 않았다. 어제와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고 그래서 좋았다. 차가 달리는 동안 내내 잠을 자는 JS씨, 피곤해 보인다며 오늘은 내게 자리를 양보했다.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둔 좌석은 침대나 다름없었다.

바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할 수가 있었다. 덜컹거리는 중에도 포근한 오리털 이불이 이내 잠을 불렀다. 그러나 오래 잠들진 못했다. 고대하던 풍경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맘에 걸려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내 자리로 돌아와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차창 밖으로 풍경을 바라보았다. 낮게 가라앉은 구름과 안개를 배경으로 사물들이 끊임없이 다가오고 멀어지는 모습이 마치 꿈을 꾸듯 몽환적이었다.

웨스트코스트가 다 끝나가는 곳의 한 공원에 잠시 차를 세웠다. 험한 하스트 패스가 제대로 열려서 오타고 지방과 연결이 된 것은 1966년, 그 사실을 알려주는 기념비가 그곳에 있었다. 기념비 너머로 눈썹 모양의 아름다운 해안이 내려다 보였다. 해안을 내려다보며 촉촉하게 젖은 공원에서 우리는 체조를 했다.

각자 동작 하나씩을 선보이면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했다. 덕분에 움츠러든 몸이 활짝 펴졌다. 폐부로 스미는 바다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차를 왼쪽으로 틀어 서해안을 벗어났다. 달리면서 점심 먹을 장소를 물색했다. 모에라키 강이 나타나자 강가에 테이블을 폈다. 풍경을 안주 삼아 간단한 점심을 준비했다.

라면과 햇반, 김치 한 팩이 전부였지만 와인 한 잔을 곁들이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모기가 성가시게 달려들고 근처에 화장실이 없어 자연 그대로의 화장실을 이용해야했지만 그것이 우리의 웃음을 막지 못했다.

하스트 패스로 접어들자 진짜 남부 알프스의 속살 여행이 시작됐다. 뉴질랜드 남섬 웨스트코스트 지방자치지역 남서쪽에 있는 소도시인 하스트는 19세기 독일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인 율리우스 폰 하스트(Julius von Haast)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세계자연유산인 테와히포우나무공원(Te Wahipounamu-Suuth Weat New Zealand)이 구역 내에 있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며 하스트 부근의 산에서는 키위새에 속하는 희귀종인 하스트 토코에카(Haast tokoeka)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하스트를 지나는 이 길은 유럽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에 마오리 족들이 포우나무(옥)를 찾아 웨스트코스트로 넘어갈 때 사용하던 고갯길이다. 계곡 사이를 잇는 일차선 다리도 많고, 산 길이 지형 그대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험한 길이다.

뉴질랜드 남섬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고개는 세 개다. 이전 여행에서 아서스 패스를 넘었고, 이번 여행에서 나머지 두 고개를 넘게 됐다.

이미 카이코라에서 그레이마우스로 넘어갈 때 루이스 패스를 넘었고, 오늘 하스트 패스를 넘는 것으로 세 개의 고개를 다 석권하게 된 것이다. 포장 도로를 힘들게 완성해준 이름없은 이들 덕에 하스트 패스 비경을 이렇게 차 안에서 편하게 누리니 감사할 뿐이다.

하스트 고갯길 주변에는 트레킹 코스를 알리는 푯말들이 많다. 시간이 되면 한 두 곳이라도 걸어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고 계곡으로 내려가 강 물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돌을 던져 수제비를 뜨기도 했다. 다시 몇 개의 커다란 호수를 지나고, 호수에 걸친 쌍무지개를 보면서 달렸다.

/정리=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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