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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미리 받은 생일선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지난 설날 세배를 드리고 무릎을 모아 마주앉은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삐뚤빼뚤 꼭꼭 눌러 쓴 글자가 선명한 봉투 하나를 내놓으셨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빼꼼히 웃고 있는 몇 개 글자, 금세 촉촉하게 눈시울을 붉히게 한 그 하얀 봉투는 내 주머니 속에서도 한참을 우두커니 있어야 했다.

“내가 늘 너한테 받기만 했제? 3월, 니 생일에 나도 처음으로 생일선물 한 번 할라꼬. 뭘 할까 하다가 그냥 니한테 준데이. 내 생각엔 쪼끄마한 반지라도 사면 좋겠다마는.”

넘치는 사랑, 늘 그 선물주시는 어머니는 그걸 선물로 생각지 않으신 것 같다. 어린 날, 매년 생일 때마다 생일상 받아 안고 얼마나 좋아했던지. 수수팥떡 한 접시에 고봉으로 꾹꾹 눌러 담은 찰밥 한 그릇, 싱싱한 광어 한 마리 우려낸 걸쭉한 미역국 한 대접이면 그날 하루는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했다. 삼신할머니께 정성껏 기도드리고 숟가락 들기 시작하는 생일상. 하루 종일 생일 고봉밥 한 그릇으로 세끼 밥 나눠먹으며 겅중겅중 뛰어다녔던 그 생일날의 기분.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기억 속 생일상이 나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생일선물로 남아있다.

명품 백처럼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고가의 선물이 있는가 하면, 한 번 손잡으며 따스하게 전해주는 말 한 마디의 선물도 있다. 남에게 인사나 정을 나타내는 뜻으로 주는 다양한 선물의 가치. 결코 돈으로만 계산할 수는 없는 그 값어치. 그 가치에 담긴 의미는 정성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다양한 선물을 받은 적도 있겠지만 아직도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는 선물이 있다. 객지에서 장티푸스를 앓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해 아버지께서 농번기를 피해 며칠간 짬을 내어 오셔서 손수 한약을 달여 주신 적이 있다. 그 계신 며칠 동안 아버지께서는 빨간 목도리 하나를 짜서 겨울나기 선물이라며 내놓으셨다. 이웃한 고모한테 나 몰래 임시로 배우신 초보 뜨게 실력이라 듬성듬성하기는 했지만 그 목도리로 전해오는 따스한 사랑을 아직도 놓지 못하는 이유 또한 그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아버지의 정성, 그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이른 아침, 생일 미역국을 앞에 놓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엄마, 오늘이 그날이야. 나 낳으시던 그날 말이야, 우리 엄마 얼마나 힘들었을까. 거기다 딸이었으니 실망도 컸겠지? 고마워, 엄마! 유난히 몸이 약해 밤잠 못자고 칭얼거리며 약을 달고 사는 나를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진짜, 진짜 고마워요.”

“이쁜 우리 딸, 오늘 미역국 맛있게 먹고 내가 준 걸로 꼭 선물 사레이.”

전화를 끊고 어머니께 드린 말 한참을 곱씹어 보았다.

‘저는요, 엄마가 살아 계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좋은 선물이에요. 억만금 돈을 줘서도 아니고 매일 같이 놀아줘서도 아니구요. 생일날 이렇게 날 낳아주신 엄마께 전화를 드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 줄 아세요? 그러니 제 목소리 들어주시는 엄마 계신 게 제게는 제일 큰 생일 선물 맞지요?’

한참을 말없다 뚝 끊으시는 전화기 너머로 나는 또 중얼거렸다,

‘엄마, 예쁜 반지 사서 며칠 있다 엄마께 자랑하러 갈게요. 그리고 그 반지 엄마냥 여기고 늘 끼고 다닐게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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