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雪原)의 아침일기
/강중훈
뉠까.
구순九旬을 넘긴 노모의 머리칼 같은 새벽
선잠 깬 침실 창을 살며시 열고
그것들 사이로 당신을 떠나보내던 이별과
그 이별들이 숨죽이던 간절함과
모락모락 피어오를 아침 햇살 속으로
하얗고 하얗게 서리를 뒤집어 쓴 채
계절을 잊고 피어나버린 구절초 한 송이.
- 강중훈 시집 ‘털두꺼비하늘소의 꿈’
그리움은 보이지 않는 형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만질 수 없고 볼 수 없는 그 실체 앞에 서면 마음이 더욱 안타까워진다. 그리움은 내 안에 각인된 이미지다. 잠시라도 스쳤던 사람이 남긴 어느 한 모습이다. 하물며 평생을 함께한 가족이 남기고 간 모습은 영원히 지울 수 없다. 시인은 밤새 내린 눈으로 설원이 된 바깥 풍경을 보며 당신을 떠나보내던 시간을 생각한다. 하얗게 밝아진 새벽은 ‘구순(九旬)을 넘긴 노모의 머리칼 같은 새벽’이며 ‘선잠 깬 침실 창을 살며시 열고 그것들 사이로 당신을 떠나보내던 이별’의 순간이다. 그 이별들이 숨죽이던 간절함 속에는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이 있다. 그리하여 ‘모락모락 피어오를 아침 햇살 속으로’ ‘계절을 잊고 피어나버린 구절초 한 송이’는 제주도 4.3 사건의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나 뼈아픈 삶을 살다 가신 내 어머니 모습이다. 그 한 맺힌 현장, 지금도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인은 이렇게 어머니를 그리는 시 한 편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