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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성칼럼]후회는 더 큰 슬픔을 낳고

 

엊그제 천안에 다녀왔다. 열흘 전 배우자를 먼저 보낸 바깥사돈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딸아이에겐 시어머니인 안사돈이 유명을 달리한 것은 암 때문이다. 그것도 1년 생존 확률이 10%를 넘지 않는다는 담도암으로 인해 판정 7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물론 항암 치료도 받았다. 또 입원 치료를 받는 동안 우여곡절도 있었으나 숨지기 직전까지 아무런 예견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투병 생활을 했다. 그러다 숨진 당일 새벽 간병인에게 어지럽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홀연히 돌아오질 못할 여행을 떠난 것이다.

부인보다 몇 살 위인 사돈은 반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 내내 사별한 사람답지 않게 담담히 대화를 이어 갔다. 요즘 흔한 정치 얘기를 비롯해 아이들, 손주, 농사 이야기까지 일상의 일들이 화제에 올랐다. 참았던 눈시울을 붉힌 것은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간 뒤였다. 그러면서 운명임을 받아들이지만 ‘먼저 보낸 슬픔보다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한 후회’가 더 커 자신이 밉다고도 했다. 혼자 있을 땐 더하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나고 과거를 회상하면 아쉬움이 남는 일들만 기억나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도 했다. “좀 더 잘해 줄 걸….” “올해 나이가 육십인데… 새끼들 시집장가 다보내고 손주 재롱에 편한 일만 남았는데….”

어미를 잃은 자식들의 슬픔과는 또 다른 아픔이 사돈 가슴속 깊이 남아있는 것을 느끼며 감춰져 있던 아린 마음이 되살아났다. 꼭 10년 전 같은 슬픔을 경험하며 비슷한 감정을 가졌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외면한 채 살아온 나이기에 더욱 그랬다. 때문에 늦은 저녁 돌아오는 시간 내내 ‘후회’란 말이 여운으로 남았다.

열흘 전 안사돈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사흘 뒤 또 다른 부고를 접했다. 이번엔 30년 넘게 인연을 맺어 왔던 지인이다. 평범한 일상을 지낸 저녁, 모임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뒤 가슴이 답답하다고 호소한 지 두어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사인은 심장마비. 갑작스런 그의 죽음에 문상을 갔고, 그곳에서 배우자로부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떠난 슬픔보다 잘해주지 못한 후회가 더 크다는 말을.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쓴 김형석 전 연세대 교수는 부인 순애보로 매우 유명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눈만 깜빡이는 부인을 23년 동안 돌보았고, 사별 후 홀로 노년을 맞았지만 역시 반려자를 잃은 가장 큰 슬픔은 후회라고 했다. 적지 않은 세월 함께 한 시간, 돌봐온 시간들 속에 ‘좀 더 잘해 줄 걸’이란 아쉬움이 많이 남아서라고 한다. 그러면서 아쉬움 속에 남겨진 고독, 그것을 극복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노(老) 지성인이 느끼는 감정이 이럴진대 범인(凡人)들의 사별한 회한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데이비드 실즈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은 실로 모욕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암시하고 경고한다.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는 게 아니라, 이빨을 뽑아놓고, 머리카락을 뭉텅뭉텅 뜯어놓고, 시력을 훔치고, 얼굴을 추악한 가면으로 바꿔놓고, 요컨대 온갖 모멸을 다 가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잊고 살고 있다. 예고된 고통이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 이기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대하고 특히 배우자를 대한다. 그리곤 배우자의 죽음을 접한 많은 사별 자들이 “밉더라도 함께 지낼 때가 좋았다는 걸 영영 헤어지고 나서 깨달았다”는 말을 한다. 때는 이미 늦은 후에….

세상에는 나이에 관계없이 배우자 사별의 사연이 차고도 넘친다. 내용도 가지가지다. 그런 가운데 한국인은 배우자를 잃은 슬픔을 유독 오래, 심하게 앓는 것으로 나타났다. 슬픔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사회 문화와 외톨이가 된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지만 역시 ‘후회’가 그 중심이다.

최근 미국노인학회의 발표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미시간대 인구연구센터 아푸르바 자다브 교수팀은 2002∼2013년 한국과 미국, 영국, 유럽, 중국의 55세 이상 고령자 2만6835명을 대상으로 배우자 사별 전후 우울 정도를 분석했다고 한다. 그중 한국인의 우울 점수는 배우자 사별 전 3.49에서 사별 후 5.07로 크게 높아졌다. 배우자 사별에 따른 우울감은 모든 나라에서 여성보다 남성에게서 오래 지속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역시 함께한 시간들 속에 아쉬웠던 후회가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부부간 후회 없는 삶, 역시 힘든가 보다. 그렇지만 외면해서도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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