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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작은 부주의가 큰 것을 앗아간다

 

청명 한식이 지나면서 농경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밭 한쪽 매화가 화사하고 들풀이 벌써 빼곡하다. 작년 가을 파종한 마늘은 제법 실하다. 잡초를 제거하고 물을 두어 번 줬지만 계속되는 봄 가뭄에 목이 마른지 마늘잎이 타들어간다.

검불이며 호박 줄기 콩대 등 지저분한 것을 긁어모아 불을 놓는다. 건조해서인지 불길이 제법 거칠다. 바람 없는 날 골라서 불을 놓는다고 했어도 막상 불길이 높아지니 겁부터 난다. 서둘러 불길을 잡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작은 불씨 몇 남아 곧 꺼지겠다 싶어 다른 일을 하다보니 불씨가 되살아나 불길이 옮겨 붙고 있다. 바람기 없는 날도 이럴진대 바람 부는 날은 대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을 끄고 주변정리를 하고 혹시나 싶어 언저리를 삽으로 파 놓고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편해졌다.

며칠 전 당진가는 길에 도로변으로 올라서는 불을 끄는 것을 보았다. 논두렁을 태우다 불길이 도로변 언덕으로 옮겨간 모양이다. 일부 가로수가 화상을 입었고 꽤 넓게 불에 탄 흔적이 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아직 불길이 다 잡힌 것은 아니다. 저러다 지나가는 차에 옮겨 붙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싶어 차선을 바꿔 달렸지만 위험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논두렁 태우기가 병충해를 예방하고 검불 제거 및 농사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지만 불을 놓다가 산불로 번지는 일을 종종 본다.

이렇게 건조할 때는 특히 화재예방에 신경써야 한다. 사소한 부주의로 발생하는 화재사건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담뱃불로 추정되는 불이 강변 갈대밭에서 일어났다. 소방헬기 및 119가 출동하여 진화작업을 벌이는 등 큰 소동이 있었다. 갈대밭이라 인명피해는 없었겠지만 빠르게 번지는 불길로 진화작업에 나선 소방대원들이 긴장했을 것이다.

바짝 마른 건초와 건조한 날씨는 작은 불씨도 큰 불이 되기 충분한 조건이다. 산불하면 잊히지 않는 사건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니 꽤 오래된 일이다. 새참을 들고 들로 나가는데 산불이 났다. 멀리서 보니 우리 산이다. 큰일났다 싶어 어린 마음에 비탈길을 단숨에 뛰어올라가니 아버지와 어머니가 불을 끄느라 혼비백산하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일하시던 마을 분들이 달려와 함께 불을 꺼준 덕분에 크게 번지지 않고 수습이 되었다.

논두렁을 태우다 불이 산으로 옮겨 붙은 것이다. 남의 산소가 불에 타 볏짚을 썰어서 묘를 덮어주고 새 잔디가 나와 자리잡을 때까지 묘를 관리하며 미안해하던 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진화작업에 진땀을 빼다 불이 다 꺼지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눈시울이 붉어지던 아버지는 그날 밤 내내 산을 올려다보니 혹여 잔불이 살아나지는 않나 가슴을 졸이셨다고 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불을 보면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난다. 불은 정말이지 예측불허다. 소래포구에 불이나 한 순간 삶의 터전을 잃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현실이다. 그 누구도 화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만 잘한다고 예방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나부터라도 주변을 살펴보고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면 좀 더 안전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큰 일이 닥치면 인재니 예고된 재앙이니 하고 다투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소도 지키고 외양간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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