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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이 향기롭다. 며칠을 두고 포근한 날이 이어지더니 봄꽃이 다투어 핀다. 며칠 전 이웃집 담장위로 뾰족하던 목련이 그새 함박웃음을 머금고, 개동백도 진달래도 모두 한껏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에 어떤 힘으로도 거부할 수 없는 슬픔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도 연달아 이어지는 슬픈 소식은 반갑지 않은 미세먼지와 함께 내 마음에서 빛을 앗아간다.

성당에서 만난 언니였는데 늘 웃는 얼굴에 상대를 헤아리는 마음과 무슨 일에나 앞장서는 품성으로 성당에서는 물론 지역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22세 꽃다운 나이에 우리 동네로 와서 서점을 하면서 동생들 뒷바라지와 주위에 좋은 일도 많이 했거니와 무엇보다 믿음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요즘들어 사는 게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했어도 든든한 언덕이었고 모든 것을 본받고 싶은 롤 모델이었다. 그런 언니가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병원 출입이 잦더니 급기야 중환자실에 있다가 다행하게 조금 차도가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되었다. 급기야 119 구급차로 실려 간 언니를 영정 사진으로 만나게 되었다. 꽃 속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이 평소의 모습 그대로인데 이제는 손을 잡을 수도 고운 음성을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슬픔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른 아침 스마트폰 문자를 열어보니 원로 시인이신 황금찬 선생님께서 별세하셨다는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작품을 통해서 뵙게 되었고 존경하고 있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을 직접 뵈었고 우리 지역에 모시고 강의를 듣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따뜻한 음성을 지니고 계셔서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시는 분이셨다. 그 후 몇 차례 댁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기도 했고 마침내 첫 시집 서문을 써주셨다. 물론 부족한 글을 칭찬과 격려의 말씀으로 끌어올려 주셨다. 올 해도 설이 지나면 세배를 드리러 가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런저런 일로 실천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선생님을 떠나보내야 했다. 몇 년 전에 선생님의 서른아홉 번째 시집을 묶었는데 그 때 하시는 말씀이 다음에 마흔 번째 시집을 내게 되면 그게 아마 마지막 시집이 될 것 같다고 하셨고 원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기력이 쇠하셔서 작품을 쓰시기가 어려우신 것으로 전해 듣고 있었다. 빈소에서 유족분과 마지막 작품에 관한 얘기를 나누면서 유고집을 만들기로 했다. 마지막까지 시인이셨던 선생님께서도 모든 것을 다 마치신 평온한 얼굴로 우리를 배웅하시는 것만 같았다.

가인박명이라는 말이 지닌 의미가 새삼 절실하게 와 닿는다.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화면에서 시선을 끌던 조각 같은 얼굴이 젊었을 때나 최근이나 여전히 빛나고 있었음을, 화려한 역을 맡았을 때도 그렇지만 조금 후줄근한 차림을 하고 있어도 묻히지 않는 얼굴을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유작이 된 드라마에서 그렇게 야윈 얼굴이 마지막 투혼이었다는 사실을 두고 할 말이 없다. 촬영이 있는 날은 진통제를 투여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은 연기에 대한 열정 이상으로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다. 주어진 하루, 아니 단 일초도 헛되이 쓰지 않는 그래서 더 귀하다고 할 사람 탤런트 김영애를 오랫동안 좋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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