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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안산 고려인마을의 한식(寒食)

 

지난 4월5일 안산 고려인마을에 갔다. 고려인들이 땟골 초입의 우갈록 카페에서 한식행사를 치른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한식 상차림이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일을 하지 않고 손자녀들을 돌보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갖는 한식 행사에 고려인사회를 연구하는 연구자뿐만 아니라 안산시 경찰서의 외사계 형사도 상차림에 보태라고 선물을 내놓고 참석했다.

4월4일 안산 고려인문화세터 김영숙 센터장이 보낸 사진 속의 상차림은 2008년 4월 4~5일 필자가 우즈벡 타슈켄트 주 고려인 콜호즈에서 경험한 것과 모습이 달랐다. 고려인사회에서는 볼 수 없는 지방(紙榜)이 놓였고, 수박과 사과 등 과일도 위가 잘려져 있었다. 설명을 들이니 이해가 되었다. 작년 안산 고려인마을의 한식행사는 한국의 시민단체(한류열풍사랑)가 후원해 상차림을 한 것이고 때문에 한국과 고려인사회의 그것이 혼합된 것이었다.

상차림의 모습이 이상했다. 과일이 모두 2개 혹은 4개 등 짝수였다. 참석한 고려인 가운데에서도 왜 홀수가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상차림을 준비하는 우칼록 카페의 여주인은 휴대폰을 꺼내 오늘 이미 성묘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우즈벡 콜호즈의 모친이 보낸 사진을 보여주면서 짝수로 준비하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참석한 한 한국인도 제사상차림을 한국만이 통일시켰다고 지적하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거들었다. 정장 차림의 고려인마을 원로가 먼저 절을 하고 잔을 올린 다음에 한분씩 순서를 이어갔다. 한식행사를 지켜본 한국인들도 절을 하고 순을 올렸다.

소련 시기(1917년~1991년) 러시아인뿐만 아니라 소수 민족들도 자신들의 전통명절보다도 1월1일 새해와 11월3일 혁명기념일, 3월8일 여성의 날, 5월1일 노동자의 날, 5월8일 전승기념일 등 소비에트 정부가 제정한 국가명절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1985년에 시작된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따른 민족과 종교의 이중부활 현상에 이은 1991년의 구소련의 해체 과정을 통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각 공화국마다 전통 명절이 부활된 바 있다. 구소련의 고려인 사회에서도 1989년 이후 설날과 단오가 민족명절로 복원되어 고려인(문화)협회 차원에서 경축행사로 치러져왔다.

고려인들이 ‘조상의 날’로 지켜온 4월5일 한식은 페레스트로이카 이전에도 고려인을 고려인답게 해준 ‘민족’ 명절이었다. 러시아적인 요소를 수용했으나 그들과는 차별적인 장례문화와 4월5일 한식이면 어김없이 묘지를 찾아 예를 갖추는 고려인을 지방민들은 존중심으로 대했다. 고려인 콜호즈는 말할 것도 없이 중앙아시아 주류사회에서도 4월5일 고려인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성묘에 참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고려인 교사들도 나중에 보충수업을 하는 것으로 양해가 되었다.

4월5일 한식과 음력 8월15일 추석이면, 원근 각처로 떠난 고려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콜호즈를 찾는다. 성묘하기 위해서이다. 고려인들은 제사를 집에서 지내지 않는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도 3년상까지만 묘지를 찾는다. 그 이후로는 한식과 추석에만 성묘한다. 한식과 추석, 특히 한식에는 다른 지방으로 떠났거나 해외에 나간 고려인 가족들도 공동묘지에서 제사가 끝날 무렵에 꼭 집안 어른들에게 전화를 한다. 그런데 이제 우즈벡의 부모들이 한국의 자식들에게 성묘하는 사진을 SNS으로 보내주고 한식 상차림까지 알려주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고려인들이 속속 한식 행사에 참여했고 금년에는 고려인사회 스스로 준비한 제수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코리안이면서 코리아에서 ‘코리안’이 아닌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고려인사회도 이미 정주화(定住化)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7년, 러시아 고려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80주년이다. 이제 ‘귀환 고려인’은 온전한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또 1920~1930년대 러시아 연해주 시절부터 형성된 고려인생활문화도 존중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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