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성칼럼]꿈에는 희망과 좌절이 공존한다는데
[정준성칼럼]꿈에는 희망과 좌절이 공존한다는데
  • 경기신문
  • 승인 2017.04.1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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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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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필(主筆)

‘Boys be ambitious.’ 중학교 1학년 때 영어선생님이 수업하기 전 칠판에 적어놓고, 하얀 분필로 밑줄을 ‘쫙~’ 그으면서 항상 강조하던 문구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래야 꿈을 이룰 수 있다”며 어린 마음에 미래에 대한 계획을 준비시키셨던 그 선생님의 목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내 마음의 도화지 위에 인생의 그림을 그리도록 동기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50년이 흘렀다. 그리고 그때로 돌아가 보았다. 당시 꾸었던 많은 꿈들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하지만 가물가물하다. 미래에 무엇이 되고 또 어떤 일을 하려고 했던가에 대해서도 정리가 안 된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목표가 여러 번 바뀌고 너무 많아서 그럴 게다. 이후 청년 시절 눈을 뜨고도 꿈을 꾸었다. 현실에서는 꿈을 위해 노력하며 그것을 이루었을 때를 상상했고, 잠을 자면서는 현실에서 실패했던 일을 성공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되짚어 보면 불행하게도 잠을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꿈이 많던 시절이 있었는데 막상 꿈을 이루고 완성해가야 하는 장년이 되면서부터 꿈이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현실의 꿈이 걱정으로 대체되었고, 이제는 거의 없어지기까지 했다. 그래서 ‘보이스 비 앰비셔스’를 강조하시던 선생님이 생각나고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며 신바람 났던 젊은 시절의 꿈들이 그립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나의 경우는 지금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많다. 말년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머뭇거릴 뿐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서 더하다. 그러면서 문득 문득 가뭄에 콩 나듯 꾸는 요즘의 꿈도 나의 것이 아니라 내 나이 또래들의 보편적 희망인 자식들의 안녕이 되어 버렸다. 심지어 우리 부부가 계획하고 있는 노후의 꿈도 몇 번 수정하다보니 이제는 ‘그때 가봐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더 불행한 것은 이렇듯 꿈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 하는 게 요즘의 나라는 사실이다. 생각할수록 내가 미워진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 누구나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 바란다고. 하지만 그것은 바람이지 꼭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꿈은 희망이고 기대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좌절이라 말하기도 한다. 혹시 난 후자 쪽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이렇듯 꿈에는 긍정과 부정을 오가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다. 둘째는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다. ‘꿈 깨라’ ‘허황된 꿈을 꾸지 말라’고 할 때의 의미다. 갈수록 긍정적 꿈의 의미는 쪼그라들고 부정적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전문가들도 이렇게 이야기 한다. 꿈의 크기엔 두 가지가 있다고. 꿈은 자신의 능력과 처한 상황에 맞게 적절한 정도의 크기여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꿈과 비전은 크고 높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아무튼 꿈은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즐겁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만족감이나 행복도 커진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느껴진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멋진 슬로건으로는 좋지만 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일 때가 더 많다는 역설적인 얘기가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꿈의 배신을 경험하고 나면 사람들은 꿈 이야기를 거부한다. 꿈이 사라진 세상은 절망과 분노사회로 바뀐다. 주변을 돌아보면 냉혹한 현실에 서서 꿈의 비현실성에 충격을 받고 쓰러져 간 사람들도 여럿이다. 그만큼 지금은 꿈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란 방증일 게다.

국민들이 포기한 꿈을 다시 꾸게 해주고 자신의 꿈도 이루겠다는 대선주자들이 입만 열면 장밋빛 공약을 토해내는 요즘이다. 개중에는 몽환적인 이야기를 앞세우며 가짜 꿈을 팔아 표를 얻겠다는 후보들도 있다. 자기 꿈에만 집착한 나머지 권력을 잡고 싶은 원초적 욕망을 숨긴 채 표만 쫓아다니는 후보도 있다. 적폐를 주장하며 보수와 손잡으려 하고, 안보를 이야기 하며 좌파와도 물밑 접촉을 하는 추태도 마다 않는다. 예부터 ‘자신의 꿈을 아주 상세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는 사람’을 항상 조심하라 했다. 특히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은 그 장광설(長廣舌) 배후에 사리사욕이 흘러넘쳐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꿈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선거기간 내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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