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라면
/이영춘
오글오글한
머리들이 모여 있다
혹은 웃는 듯도 하고
혹은 우는 듯도 한
그 얼굴들은
마치 내 동생이
직공 생활을 하면서
야간 학교를 마치던
마산 어느 공단의 여공들 얼굴 같아서
감히 나는
라면을 먹을 때마다
목 줄기가 라면처럼 배배 꼬여 진다
마치 내 동생의
피와 살이
내 건강한 폐부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아서
- 이영춘 시선집 ‘오줌발, 별꽃무늬’ / 시와소금
50대 이상의 고학력자들이라면, 혹은 가난한 집의 수재라면 형제에게 빚을 진 경우가 많다. 가지 많은 나무로 상징되는 60년대 이전의 출생자들에게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건 행운이었다. 가족의 희생이 있어야 가능했다. 당시는 막 출시된 라면을 먹는 것조차 호사였다. 풍요의 시대인 요즘 컵라면이 궁핍을 연상시키지만. 식사는 필요한 영양의 보충 외에 짧은 시간 차 한잔이라도 마시는 여유를 떠올린다. 그러나 허기만 때우고 일터로 가야하는 고단한 삶이 있다면…….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안락의 이면에 누군가의 피와 살이 공물로 바쳐진다는 사실에 숙연해진다. /이미산 시인